사랑 그리고 너와 나와의 만남
사랑 그리고 너와 나와의 만남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11.2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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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우리는 여러 가지 종류의 사랑을 갖는다. 피를 근본으로 하는 혈족간의 사랑, 어버이와 자식간의 사랑, 친척간의 사랑, 민족과 동포에 대한 사랑, 남녀간의 사랑, 부부간의 사랑, 사제지간의 사랑, 인류애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진리와 예술과 문화에 대한 사랑, 동물에 대한 사랑이 있다.

시인 루소는 "산다는 것은 곧 사랑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생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기쁨이 있고 향기가 있고 보람이 있고 행복이 있다. 인생에서 사랑이 없다고 상상해 보라. 삶의 의미가 없어지고 삭막해지게 될 것이다. 희랍어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세 가지로 표시된다. 첫째 즉 하나님의 사랑을 아가페(agape)라고 했다. 그것은 경건하고 엄숙한 것이요, 자기를 바치고 남을 용서해 주는 종교적·헌신적 사랑이다. 둘째 젊은 남녀간의 사랑을 에로스(eros)라고 했다. 그것은 뜨겁고 정열적인 것이요, 상대방을 소유하고 독점하고 싶은 사랑이다. 셋째 이웃 사랑을 필리아(philia)라고 했다. 그것은 인간 일반에 대한 넓은 배려와 우정의 사랑이다. 사랑을 지혜롭게 다루면 인생은 즐겁고 행복하다. 반면 '사랑은 불장난'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불장난 사랑은 조심해야 한다. 불장난을 잘못하다가는 불에 크게 다치게 된다.

영국의 작가 J·K 제롬은 "사랑은 홍역과 같다. 누구든지 한 번은 걸려야 한다"라고 했다. 사랑에는 연령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국경이 없고 신분이 없고 계급이 없고 상하도 없고 귀천도 없다. 그만큼 사랑은 인생의 보편적인 강렬한 정열이다. 사랑은 너와 나와의 깊은 만남이다. 지극히 불행한 만남도 있고, 축복받은 만남도 있다. "남자는 일에 살고 여자는 애정에 산다"는 말이 있다. 남자는 사회적 활동에서 인생의 보람과 의미를 찾고, 여자는 사랑과 애정에서 생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한다. 사람은 저마다 어떤 대상에 자기 생명과 정열을 걸고 살아간다.

바이런은 그의 시 〈돈 주안〉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자의 사랑은 그의 인생의 일부요, 여자의 사랑은 그의 인생의 전부다" 또한 프랑스의 여류 작가 스탈 부인은 "여자에게 있어 사랑은 생애의 역사다. 그러나 남자에 있어서는 한낱 삽화에 불과하다" 체코의 작가 바스타는 "남자는 자주 사랑하지만 얕다. 여자는 드물게 사랑하지만 깊다"라고 했다.

우리는 애인 앞에서 순수해지고 온유해지고 선량해진다. 사랑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고 계시하고 영감을 준다. "개도 사랑할 때에는 아름다운 운율로 짖는다"고 어느 시인은 갈파했다.

"사랑을 할 때에는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플라톤도 말했고 바이런도 말했다.  사랑과 육욕(肉慾)은 다르다. 사랑은 혼(魂)의 결합이요, 육욕은 육체의 결합이다. 사랑은 결혼이라는 만남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사랑하면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의 자식을 낳고 싶어하고,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제 자식을 잉태시키고 싶어한다. 이것은 인간의 건전한 생명의 의지이다. "여성을 소중히 지킬 수 있는 남자라야 여성한테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 언제나 변하지 않아야 진정한 사랑이다"라고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갈파했다. 사랑은 선택에의한 소중한 만남이다. 넥타이나 책 선책과는 다르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선택은 그렇지 않다. 마음에 안 든다고 마음대로 집어던지거나 갈아치울 수 없는 것이다. 잘못 선택하면 나도 불행하고 상대방도 불행하다.

부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도 갖지 말라. 미워하는 사람도 갖지 말라고 했다. 깊은 의미가 되새겨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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