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선일미(茶禪一味)
다선일미(茶禪一味)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12.0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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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주전자에 차를 넣고, 맥박이 뛰는 속도로 하나아 두울 세엣… 이렇게 아홉을 세고 또 다시 아홉을 헤아리면 애벌 차가 우러난다. 그런데 그 첫 번째 아홉을 헤아렸을 때 뚜껑을 사알짝 열어보아라, 이때 차향(茶香)이 스며 나오는데, 이 향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그윽하고 신비로운 향이다. 갓난 아기를 따스한 물에 멱을 감긴 다음 살갖에 코를 댔을 때에 나는 배냇 향 같은 우주를 생성시키는 은근하고 그윽한 기운이다. 차를 마시는 사람은 바로 이 향을 맡을 줄 알아야 한다. 만일 물이 너무 뜨거웁거나 정도 이하로 차면 이 배릿한 향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가마솥에 어린 찻잎을 넣고 덖을 때 온 세상은 그 배릿하고 구수한 향으로 가득 차 버린다.


차는 텅 빈곳에 어리는 향기로운 모양새(空卽是色), 그 모양새 속에 어려 있는 텅 빈 것(色卽是空), 우주의 원동력과 순리와 평등을 가르친다. 첫 번째 우린 것은 배린내가 나는 십대 인생의 맛이고, 두 번째 우려 마신 것은 혈기 방장한 이십 대 인생의 맛이다. 세 번째 것은 삶의 맛을 바야흐로 알기 시작하는 삼십대 인생의 맛이고, 네 번째 것은 깨달음이 보일똥 말똥 하는 사십대 인생의 맛이고, 다섯 번째 것은 부처님이 눈을 반쯤 감은 뜻을 알기 시작하는 육십대 인생의 맛이고, 일곱 번째 것은 연꽃들이 다 지고 없는 연못의 황달든 연잎에 어린 불음(佛音)을 듣는 칠십대 인생의 맛이다. 그리고 여덟 번째 마시는 것은 ‘나 아무말도 하지 않았느니라’하고 말씀하진 부처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팔십대 인생의 맛, 아홉 번째 것은 햇볕에 잘 바래진 모시같이 머릿속이 바래지는 구십대 인생의 맛이고, 열 번째 것은 사바세상과 아미타 세상을 넘나드는 맛이라고 초의선사의 은사이신 벽봉스님께서는 가르치셨다.

중국에서는 곡우(穀雨) 전후에 따낸 차가 향기롭다지만, 조선에서는 곡우에서 입하(立夏)사이에 딴 차가 가장 향기롭다. 그 찻잎의 향기는 중국의 차향(茶香)하고 다르다. 중국의 차는 씁쓸하고 떫은 맛만 있고, 향은 숭늉의 향 정도가 고작이다. 오직 조선의 차에서 배릿한 배냇향이 날뿐이다. 배냇향이야 말로 차향 가운데서 꽃인 것이다. 배냇향은 세상에서 가장 생명력이 강하고 그윽한 향이다. 차를 마실 때 그 향을 맡는 것은 그 생명력을 들이키는 것이다. 선(禪)이란 쉽게 말한다면 사람의 성정(性情)속에 잠자고 있는 생명력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초의선사께서는 감기가 걸리면 약을 따로 짛어 먹지 않고 차를 보통 때보다 더 진하고 뜨겁게 많이 자주 마시곤 했다고 한다. 그러면 다른 때보다 더 자주 오줌을 누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오줌을 통해 감기로 말미암은 몸 속의 독소들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요즈음에도 감기가 걸리면 의사들이 뜨듯한 보리차를 많이 마시라고 권유한다. 옛 선인의 지혜가 새롭게 느껴진다.

차 맛은 깨달음의 맛이고 그 맛은 텅 빔의 맛이고 그 텅 빔의 맛은 부처님 마음의 향기이자 중생들의 슬픔의 향기, 가난한 마음의 향기이다. 밤 새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밤에 이슬을 흠뻑 받은 잎이 가장 으뜸이라고 하는데, 대나무 숲에서 댓잎에 맺혔다가 떨어진 이슬을 받고 자란 찻잎을 따서 붕우와 함께 조용한 산사에 앉아 다담(茶談)을 나누고 싶다.「차를 혼자 마시는 것은 제일 제대로 마시는 것이고, 둘이서 마시는 것은 잘 마시는 것이고, 3∼4인이 함께 마시는 것은 그저 맛을 보는 정도이고, 5∼6인이 마시는 것은 제대로 마신다고 할 수 없고, 7∼8인이 둘러앉아 마시면 차를 보시(布施)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초의선사께서는 「산보다는 물이 훨씬 시끄러운 법이다」라고 하셨다. 산림은 적막한데 속세는 너무나 시끄럽다. 박근혜정부는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어서 내일로 나가고자 하는데 정치권은 지난일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세상의 복잡한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배냇향 나는 차나 한잔 나누면서 여유를 즐겨 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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