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전설 혹은 동화
신화, 전설 혹은 동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8.21 1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인수/민들레 공동체 대표
따뜻한 오후 장모님과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다. 마당에는 여러 마리 고양이들이 왔다 갔다 하고 아이들은 새끼고양이를 안아도 보고 장난도 치며 함께 놀고 있다. 이 모습을 보시던 장모님께서 또 희한한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이전에 시골에는 접살병이라는 무서운 병이 있었는데 고양이 털이 몸에 들어가 그것이 사람의 머리에 돋아나면 십중팔구 죽는다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을 현대인이 아무도 없다. 그런데 장모님께서는 심지어 머리에 나 있는 고양이 털을 뽑아주는 전문 시술사들이 동네에 있었단다. 동네 사람들이 비싼 값으로 불러다 머리털 속에 나 있는 고양이 털을 찾아내어 접살병으로부터 구해 준다는 이야기다. 장모님은 농담하고 거짓말을 하시는 분이 아니다. 비과학적이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나는 믿을 도리를 찾아본다.
또 한 이야기다. 합천 초계 옥두에 사실 때의 일이다. 무지개는 산 깊은 곳 샘물에 그 뿌리를 두는데 그 샘물에 가 보면 물이 끓어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단다. 그리고 동네 아낙네들은 머리를 감으러 그 샘물에 갔다 온다는 이야기이다. “어머님, 정말 보셨어요”라고 물으니 무지개 뿌리가 닿아있는 옥두 옹달샘이 끓는 모습도 보았단다. 이 신화 같은 이야기 역시 현대인이 볼 때 지극히 비과학적이고 웃어넘길 만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보고 체험했다는데 무슨 이유를 달까.
장모님은 의식이 또렷하고 기억력은 필자보다 뛰어나다. 팔남매와 이십 여 명의 손자손녀의 생년월일, 가족 기념일 등을 죄다 꿰고 계실 뿐 아니라 절기를 정확히 짚어 내셔서 농사일에 관한 한 훌륭한 조언자가 되신다. 장모님은 올해 연세가 88세다. 그리 오래 사실 것 같지는 않다. 이제 세상을 떠나시게 되면 세상은 살아있는 전설, 신비에 가득한 자연, 동화 같은 세상을 또 상실할 것이다.
신화, 전설, 동화가 없어져 가는 시대이다. 책을 통해서만 겨우 그 옛 이야기를 확인하고 그런 말도 되지 않지만 매력적인 스토리를 즐긴다. 우리시대가 잃어버린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신화와 전설과 동화를 잃어버린 세대가 되었다. 자연과 세계의 비밀을 연구하고 해석 또는 해체하고 그 일부를 응용, 이용해 먹는 습관이 소위 과학적이라는 미명으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정착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유럽의 과학혁명 이후 인류는 자연과 세계의 거의 모든 신화를 비신화화 시키고 전설을 무위로 돌렸고 동화대신 숫자와 경제와 언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과학은 우리 시대의 종교가 되었고 과학자는 그 제사장과 예언자가 되었다. 모든 사람은 그들의 과학적 발견과 논문에 권위를 부여한다. 이제 과학만이 말할 권리를 얻게 되었고 합리와 논리 그리고 수치만이 사실을 대변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었다.
리차드 도킨슨, 스티븐 호킹 같은 최고의 학자들은 신의 부재에 대한 강력한 이유를 설명하고 이 세상은 신이 없으며, 없어야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신령한 것에 대한 개인들의 수많은 체험과 간증, 그리고 신과의 교류를 경험한 인류의 풍부한 유산은 과학적 논리 앞에 그 진정성을 훼손당하는 것 같아 보인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의 공동체에 대한 희망은 점점 멀어져 보인다. 한 인간이 가진 무한에 가까운 가치와 그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은 이익과 경쟁과 효율의 이름으로 물화(物化)되고 잊혀져 가는 세대이다.
물질과 자연세계를 해체, 분리하고 해석하고 응용해서 과학의 이름으로 그 유용성을 획득하는 것도 소중하나 우리는 또한 그 물질과 세계의 비밀을 간직하고 우리의 삶에 통합시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우정을 찾는 것도 절실하지 않는가. 우주와 세계에 대한 감수성은 본원적으로 인간성에 닿아있고 과학과 수학 그리고 경제학으로는 해석될 수 없는 “다른 지식”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우리 현대인들은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잃어버린 신화와 전설, 동화를 그리워하고 때때로 책을 뒤져볼 것만 아니라 내 속의 자연에 대한 경이감과 인간에 대한 신뢰, 그리고 신에 대한 경외심이 있는가를 살펴 볼 일이다. 한 시대가 이후 시대에 기억되는 가장 탁월한 인류의 기억방식은 바로 신화와 전설, 그리고 동화의 형태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가 있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