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민족(中國民族)의 이해(理解)(Ⅰ)
중국 민족(中國民族)의 이해(理解)(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12.20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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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한국국제대학교 국제한국어교원학과 교수/지리산막걸리학교 교장

중국민족의 기원은 곧 역사의 기원과 합치된다.

민족은 하나의 부족(部族)을 이룬 단체의식의 표징(表徵)이다. 하나의 단체로서 모임은 자연히 문화의 유적을 남기게 마련이니, 우선 고고학적(考古學的)으로 그 유적을 좇아 민족을 색원(索源)한다면 ‘제하(諸夏)’에 그 출발을 둔다.


대우 시대(大禹時代)로 추정되는 제하는 상대(商代) 이전의 조대로서 그 원수(元首)는 치수(治水)로 유명한 하우(夏禹)임을 서주(西周) 때에 기록된 ‘상서(尙書)’의 입정편(立政篇)과 여형(呂刑)편에서 그 근거를 우선 찾을 수 있거니와, 뒷날 문화적으로 가장 최초의 발명으로 칭송받는 하력(夏曆)의 사용과 하례(夏禮)의 창계에서 이미 하대(夏代)의 문화적 유산을 볼 수 있다.


한편 과학적인 고고학의 분석에 따르면 황하(黃河) 유역의 5개성에 잔류된 성(城)을 기원전 722년 전으로 추정했고, 하남성(河南城) 북부에서 발굴된 양소문화(陽韶文化)의 자기(磁器)로써 기원전 1800년 전에서 1500년 전 사이에 산서(山西) 남부에 소규모의 부족국가인 하조(夏朝)가 형성되었음을 이상의 역사학적 고고학적 징빙(徵憑)으로 단정하기에 이르렀다.


단체와 조직으로 형성된 부족국가의 효시를 하(夏)대에 둔다면 거금(距今) 3800년 전으로 그 중화민족의 자각적인 단체 의식을 살필 수 있거니와, 동시에 하우(夏禹)가 통치하던 민족은 무수히 다른 복잡한 부락과 씨족(氏族)을 집합한 것이며, 그들은 대체로 섬서(陝西)의 한수(漢水)와 위수(渭水)유역과 산서 등지에 분포된 것이다.


다시 소급하여 기원전 3천 년의 지층(地層)에서 발굴된 바에 의하면 기원전 2500년 전후해서 여덟 가지의 사전문화(史前文化)와 기원전 2천년엔 새로운 문화로서 양소문화와 용산문화(龍山文化)가 각각 하남성 북부와 산동성(山東省) 제남(濟南) 동부에서 형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니, 문화적인 부족의 역사는 다시 약 1천 년을 소급하여 거금 근 5000년 전으로 추산할 수 있다.


민족의 형성은 위와 같다고 하나 인종의 내력은 그동안 애매한 가설이 떠돌더니만 근 40년 동안의 내외 고고학자들의 연구로 일단 정설에 가까운 단정을 내리고 있다.
한때 19세기 말 프랑스 학자 라쿠페리(Terrien Lacouperie)는 중화 민족은 그 고대문화가 바빌론 문화와의 공통성으로 미루어 서양의 바빌론에서 이동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1992년 북경 부근 주구점(周口店)에서 원시인의 두개골 화석인 ‘북경인(北京人)’이 발견되고, 최근에는 섬서성의 남전원인(藍田原人)과 운남성의 원모원인(元謀原人) 등이 각각 60만 년 전과 170만 년 전의 원시인으로 추정되자 중화 민족의 중국 본토 생성설을 모두 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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