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자리
이름과 자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12.2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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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다 제 이름이 있다. 이름이 없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 이름이 있으면 반드시 그 이름에 해당하는 실질이 있어야 한다.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자격과 실질과 알맹이를 가져야 한다. 이름은 있지만, 그 이름에 해당하는 알맹이를 갖추지 못할 때, 우리는 유명무실하다고 한다. 명(名)만 있고 실(實)이 없는 것이다.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알맹이와 자격을 갖출 때, 우리는 유명유실(有名有實)하다고 한다.


우리 주위에는 유명무실한 것이 너무나 많다. 이름은 다 훌륭한데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는 알맹이와 실력이 없는 것이다. 유명무실한 국회, 유명무실한 헌법, 유명무실한 교육, 유명무실한 관료, 유명무실한 부모, 유명무실한 자녀, 유명무실한 가정, 이로 인하여 사회의 기강이 흐리고 민족의 힘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제 이름 값을 하고, 제 이름 구실을 하자. 스승이 스승 구실을 하고 학생이 학생 구실을 제대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다 제자리가 있다. 우리는 저마다 제 자리를 알고, 제 자리를 지키고,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아니 될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눈은 눈의 자리에 있고, 입은 입의 자리가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리가 있고, 어머니는 어머니의 자리가 있다. 선생은 선생의 자리가 있고, 학생은 학생의 자리가 있다. 저마다 제자리를 지킬 때, 가정도 화목과 발전이 있고 사회의 번영이 있게 될 것이다. 저마다 제 자리를 알고,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을 수분(守分)이라고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저마다 제 자리에 있을 때 건강하고 아름답다. 학생은 학교에서 공부할 때 가장 아름답고, 선생은 교실에서 가르칠 때 제일 아름답다. 어머니는 어린애를 품에 안고 자식의 얼굴을 자애(慈愛)의 눈으로 들여다볼 때 아름답다. 이는 제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고,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고, 그 자리에 있으나마나 한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다 제구실이 있다. 우리는 저마다 제 구실을 해야 한다. 어머니가 되기는 쉽지만, 어머니 구실을 다하기는 어렵다. 스승이 되기는 쉽지만, 스승의 구실을 다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구실주의의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인생의 의미는 저마다 제 도리를 다하고 제 구실을 다하는데 있다. 인생은 사명실현(使命實現)의 자리요, 직분완수(職分完遂)의 무대이다. 인생은 놀고 즐기는 향락의 놀이터가 아니고, 제각기 제 구실을 다하고 제 구실을 다함으로써 제 빛과 제 의의를 드러내는 창조의 일터이다. 사람은 사람구실을 하고, 학교는 학교구실을 하고, 나라는 나라구실을 하고, 정치는 정치구실을 하는 것이 별로 없다. 저마다 제 구실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사회가 혼란스럽고 어지럽다.

모든 존재는 다 보람을 느끼고, 보람 있게 살아야 한다. 즉 보람있는 일을 하고 보람있는 하루를 보내고 보람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보람이란 무엇이냐? 인생의 가치요, 의의인 동시에 가치있고 의의있는 일을 하였을 때 느끼는 정신적 만족감이요, 기쁨이다. 인생의 보람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분투, 노력의 결과 비로소 느낄 수 있다. 보람은 땀의 산물이요, 정성 된 수고의 대가이다. 뜻있는 일, 값있는 목적을 추구하고 실현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인생의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향락(享樂)속에서는 우리는 절대로 보람을 느낄 수 없다. 먹고 마시고 노는 생활 속세에서는 보람을 찾을 수 없는 것이 향락의 특성이다. 이것이 곧 보람과 향락의 차이점이다. 가치 있는 일에, 뜻 있는 일에 나를 바치고 나를 헌신하고 봉사할 때 우리는 인생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 보람을 느끼는 대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진리탐구에서, 어떤 사람은 사업성취에서, 어떤 사람은 예술창조에서, 보람을 느낀다. 물고기는 물에서 살고 짐승은 산에서 사는 것이 순리이다.

이름, 자리, 구실, 그리고 보람, 이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네 개의 단어이다. 계사년이 저물고 있다. 나는 나의 이름값을 했는가? 나는 내 자리를 잘 지켰는가? 나는 내 구실을 충실히 했는가? 나는 한해 보람있는 일을 했는가? 굳바이 계사년 해피뉴이어 갑오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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