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의미
5월의 의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5.3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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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시인
예전에는 1년 중 5월이 가장 기다려졌던 달이다. 꼭 어린이날이 있어서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그때는 어린이날이라고 해도 요즘처럼 특별행사들이 여기저기서 다투어 열리지도 않았거니와 가족끼리 야외놀이를 가거나 하다못해 자장면 외식도 하러가지 못했다.
 
어버이날 역시 그랬다. 가슴에 조화 카네이션을 달아드려도 마냥 흐뭇해하시던 어른들은 그날도 들일을 해야 하는 날이었다.

그래도 5월이면 어김없이 우리 곁으로 찾아드는 눈이 부신 연초록 신록이 그 어떤 선물보따리보다 좋았다. 오일장에 간 엄마를 발뒤꿈치 들고 종종걸음으로 오가며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울타리 너머로 고개를 쑥쑥 내미는 빨간 장미는 설렘 그 자체였다. 아마 금상첨화(錦上添花)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때가 있을까 싶었다.

이맘때면 보리밭에 나가 패 오르는 보리목 하나 쑥 잡아 뽑아서 입에 대고 후- 불기만 해도 보리피리가 되었다. 집 앞 개울가에서 이제 막 물이 오른 나뭇잎들 한 움큼 뜯어서 동무들과 함께 나뭇잎 배 만들어서 띄우고 놀면 그 장면이 그대로 ‘나뭇잎 배’ 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5월은 그런 맛이 전혀 안 난다. 아이들을 데리고 어린이날 기념행사를 따라 야생차축제장을 가 봐도 남강둔치를 찾아봐도 우리를 처음 맞아주는 것은 불법주정차와 관객들의 무질서 한 공연관람 태도였다. 백보 양보해서 마땅히 차를 댈 곳이 없고 또 어린 아이들이라 호기심에 무대 앞까지 나갔다고 치자.
그러면 아이들과 함께 앉았던 그 자리에 나뒹구는 쓰레기는 뭔가! 본부석에 가서도 못 얻었던 공연순서지가 행사가 끝나자 엉덩이 밑에서 들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그것도 자기들이 낸 세금으로 만든 것인데. 이런 식이면 어쩌자는 것인가. 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가.

아무리 어린이날이라 해도 그렇지 꼭 보여줄 것을 보여주고 가르칠 것을 가르쳐야 한다. 이런 행사장에 와서 자식 앞에 두고 부모가 솔선수범으로 불법주정차에 쓰레기 무단투기를 조장한다면 아이들은 그 현장에서 도대체 뭘 배울 것인가! 차라리 안방에서 TV 보는 것만도 못하지 않는가.

일제 강점기인 89년 전, 방정환 선생은 무엇을 기대하고 어린이날을 만들었던가. 손바닥에 스마트폰 하나면 전 세계가 한 눈에 들어오는 21세기의 오늘,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며 어린이날 행사장을 찾는가. 시대적 상황은 그때와 지금이 너무 달라졌다. 그러나 어린이의 본질적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이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이번 어린이날을 맞아 한 조사기관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아이들의 소원은 학원 안 가는 것과 학습지 안 푸는 것과 성적 걱정 안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아이들의 절실한 바람과는 달리 어른들이 기획하고 연출하는 어린이날은 어떤가.

대부분의 공연무대가 어린이는 앉아서 구경만 하고 그나마 체험행사는 돈을 내야 줄서기가 가능한 돈놀이 판이다. 이게 어찌 어린이날 행사장 풍경이란 말인가. 이는 마치 ‘ 애야, 세상은 누가 뭐라 해도 이렇게 돈이 있어야만 너 하고픈 것을 하면서 살 수 있어!’ 라고 역설하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인근에 학교 운동장 텅텅 비워 두고 자기 편한 곳에 차를 세우고 아이가 횡단보도로 뛰어가면 신호등이 귀찮다고 그 손을 잡아채서 무단횡단을 하는 것은 더 가관이다. 또 아이들이 깔고 앉은 안내장을 가지고 일어서자 쓰레기를 들고 온다고 야단을 치는 부모들을 보면 차라리 이날을 없애자는 말에 귀가 더 솔깃해진다.
  
계절의 여왕인 5월, 이미지로 사는 여왕답게 장신구가 참 많이도 달렸다.
1일 근로자의 날, 5일 어린이 날, 8일 어버이 날, 10일 석가탄신일, 11일 입양의 날, 15일 스승의 날, 가정의날, 16일 성년의 날, 19일 발명의 날, 20일 세계인의 날, 21일 부부의 날, 25일 방재의 날, 30일 바다의 날, 5·16과 5·18은 빼도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이 좋은 계절, 왜 이런 날들이 우리에게 다 필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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