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린 사자가 용맹의 진가를 발휘한다.
굶주린 사자가 용맹의 진가를 발휘한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1.2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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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금인산 여래암 주지

우리는 호흡을 통해 생명의 에너지인 산소를 들이마시고 불필요한 탁기를 배출한다.


그리고 혈액순환과 신체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폐도 마사지하며, 심리적 장애와 우울증, 스트레스와 긴장을 완화시키며 살아간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굳은 각오로 날마다 새롭게 도전해나가 보자.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면서도 신보다 훨씬 위대한 존재이다.

고통과 죄를 생산해내는 주체이기도하면서 영생과 구원을 만들어내는 주인이기도하다.

인간은 적당히 가난하고 적당히 부족할 때 분발심이 격발된다. 배부른 사자는 할일이 잠자는 일밖에 없다. 사자는 굶주려 있을 때 용맹의 진가를 발휘한다. 지금살만 하더라도 현실안주보다는 빠릿빠릿한 자세로 발전적 변화를 모색해나가야 한다. 밥풀 먹고 새 새끼 부르듯, 안일하지 말라. “가난은 사람을 만들고 안일은 악마를 만든다” 현실에 안주하면 점차로 침몰하게 된다. 모든 일은 강렬하고 왕성한 실천력을 발휘해야만 명장이 된다.

종횡무진 분발하는 강한근성을 지녀야 체질도 강해지고 배울 것과 얻을 것도 생긴다.

늘 두뇌에다 새롭고 신선한 자극을 주도록 하자. 앉아있으면 배울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넘어지고 깨지며 상처받더라도 무한도전 속에 기회가 온다. 우리는 자력(自力)으로 자신의 경직된 껍질을 깨고나올 수 있다. 세상모든 것은 이중적인 것으로 구성되어있는 것이다.

그 이중성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우리는 부지런한 면과 게으른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인간성 또한 웃으면 부처, 화내면 중생, 바른길을 가면 부처, 삿된 길을 가면 중생이다.

그렇다면 부처가 되는 길도 엄청난 노력보다는 이 한마음에 달려있다. 얼굴이 굳어있으면 중생, 자연스럽게 웃고 있으면 부처이다. 자신이하는 일도 성공가능성과 실패가능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항상 미소 띤 얼굴로 보람찬 일만 향해 힘차게 나가보라. 산을 좋아하는 사람도 산에서 살면 산이 신물 나고, 바다를 좋아한 사람도 바닷가에 살면 바다가 신물 나는 법이다.

태풍이 오기 전까지는 푸른 하늘이 보이지 않듯, 처음 취업할 때는 그 직장이 좋아서 입사했지만 장기근속 하다보면 진저리를 친다. 이 또한 인간의 이중성이다. 정상을 향한 오르막길은 숨 가프고 힘 든다. 하지만 정상에 올랐을 때의 호기심과 환희를 그리며 숨을 몰아쉬면서도 올라간다.

반면, 정상에서 내려올 때는 걷기도 쉽고 걸음도 가볍지만 마음은 허탈하고 허전한 것이다.

우리의 앞날은 미지의 세계이기에 여좌침석(如座針席)이다.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안과 함께 호기심 가득한 세계이다. 이 불확실성과 위험을 동반한 모험 속을 용감하게 뛰어들어 육혼을 뜨겁게 불태우며 필사적인 노력을 한사람만이 성공과 행복을 거머쥘 수 있다.

성공이나 행복은 명예와 지식, 재물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씀씀이에 달려있다. 마음 그릇이 작은 사람은 밑 빠진 독이어서 굴러들어온 큰 복도 못 받는다.

먼저 남에게 자비와 사랑을 많이 베풀어 나가야 큰 복도 담을 수 있다. 그 지혜와 복을 주는 것 또한 자기 자신뿐이다. 자비와 사랑을 많이 베풀수록 마음 그릇도 점점 커진다.

주위사람들은 경쟁과 대립의 상대가 아니다. 함께 호흡하고 발맞추어 나아가는 멋진 동반자들이다. 기소불욕(己所不欲)이요, 물시어인(勿施於人)이다. 내가 원치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 나를 높이고자 하는 마음과 낮추고자 하는 이중성을 나를 낮추는 쪽으로 사용해야 세상이 평화로워진다. 나를 높이면 갈등이오고, 나에 대한 집착이 고통을 부른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나를 한껏 낮추면 마음의 평화와 여유로움이 생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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