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시
호메로스의 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2.0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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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진/수필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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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역사에서 기원전 1200년경부터 기원전 800년경까지를 ‘암흑시대’라고 부른다. 약 400년에 걸친 이 기간 동안 그리스 본토에 존립하던 미케네 시대의 여러 왕국들이 아직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어떤 외적의 침공으로 연속해서 붕괴하자 사회 전반에 대혼란이 야기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취락들이 사라지고 인구유출이 급격히 진행되었다. 북방에서 새로 내려온 ‘도리아’인들이 섞여 살게 되면서 생활수준도 급격히 저하되었다.


그러나 이 ‘암흑시대’는 그리스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변화가 진행된 시기였다. 소멸한 작은 왕국들을 대신하여 왕국 수보다도 더 많은 ‘폴리스’란 이름의 작은 도시국가가 각 지역에 생겨나서 새로운 사회질서를 구축하게 된다.

‘암흑시대’가 끝나갈 무렵인 기원전 776년 그리스에서는 폴리스 사람들의 민족적 일체감을 상징하면서 더 한층 그것을 고양시키는 제전이 창시되었다.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북부에 위치한 엘리스 지방의 올림피아에 있는 제우스 신전에서 4년에 1회씩 거행된 올림피아 체육경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호메로스의 시가 등장했다.

민족의 공유재산으로 그리스 사람들에게 널리 애송되기 시작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라는 두 대서사시는 문학과 미술 창조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위대한 작품의 모범을 보여주고, 창작의욕을 고취하는 원천이 되었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은 이 시에서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하는 것을 배우고, 자질구레한 일상생활의 지혜도 획득했다.

이처럼 그리스 사람들의 정신이나 정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어온 작품이면서도, 호메로스라는 작가가 어떤 인물인지, 두 서사시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명한 점이 많았다. 그리스 사람들은 최고의 민족시인 호메로스의 실재를 믿었지만, 근대 이후의 비판적인 학자들 가운데는 그의 실재에 대해서 회의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많았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읽어 보면 그 어느 이야기도 트로이아성 공격 이야기나 영웅의 귀국담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길게 늘어 놓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이야기들을 둘러싼 좀더 광대한 설화들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두 서사시를 40, 50일간의 사건으로 밀도 높게 재구축해서 전개하고 있다. 그 긴밀한 구성은 탁월한 시적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작품의 이러한 위대성은 이들 두 작품이 다른 사람에 의하여 내용이 추가되거나 보충이 되었다고 보거나, 두 사람 이상의 다른 사람 작품들을 합성해서 만든 작품들이라고 해석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또 이들 시를 좀더 분석해 보면 두 작품의 총 행수가 2만8000행에 달하나 인명이나 지명을 수식하는 운문의 상투구가 2만5000구나 된다. 구승(口承)되기 수월한 시다. 거기에 이 시가 완성되었을 때가 그리스 알파벳이 탄생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도 호메로스 작품이 그대로 전승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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