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비극
그리스 비극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2.1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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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진 수필문우회 회장·

기원전 5세기는 아테네의 황금시대였다. 페르시아의 2차례 침략에 맞서서 아테네는 마라톤과 살라미스 전투에서 그리스 동맹군의 승리를 주도했다. 아테네의 힘의 원천은 민주체제였다. 페리클레스(기원전 495년경~429년)는 아테네를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나라로 만들었다. 그는 “우리들이 행하는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한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점을 알게 된 아테네 사람들은 이것을 주위 폴리스에 전파하려고 했다. 그들은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가 민주주의를 전파하는데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테네는 그리스의 다른 도시국가들에게 델로스 동맹 결성을 촉구하고, 동맹에 가입한 폴리스의 내정에 간섭하여 아테네 정부와 같은 민주 정부를 세우도록 했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로 만들려고 했다. 그는 민회를 설득하여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침공으로 완전히 파괴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막대한 비용을 들여 다시 건설했다. 기원전 447년에 착공하여 기원전 432년까지 15년간에 걸쳐 완공된 파르테논 신전은 세계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기념비적인 건조물이다. 귀족시대부터 형성되어온 예술 감상의 안목과, 새로운 민주주의에서 나온 힘과 자신감이 융합된 파르테논의 조각은 페리클레스 시대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이다.

파르테논 조각에 나타난 숭고한 이념은 시(詩)의 발전에서도 나타났다. 주로 비극을 다룬 시에서 나타났는데, 그 당시의 비극은 아크로폴리스 남쪽 산록에 소재하는 야외 노천극장인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1년에 한 번 있는 디오니소스 축제일에 전 시민이 참여하는 가운데 상연된 종교적인 의식이었다.

그리스 전국 각지에 지금도 남아있는 80개 정도의 장대한 석조야외극장은 모두 기원전 4세기, 헬레니즘시대 이후에 건립된 것들로 아테네에서 창설된 연극제에서의 열광이 헬레니즘 시대를 거쳐 로마시대까지 식지 않고 유지되어온 증거이다.

그 시절에 활약한 그리스 비극의 3대 작가들의 작품은 아이스킬로스의 작품이 7편, 소포클레스가 7편 그리고 에우리피데스가 19편으로 모두 33편이 현존하고 있다. 해마다 신작이 상연되었으니 여러 시인이 많은 비극들을 생산했겠지만 긴 역사의 평가를 견뎌내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 작품은 이들뿐이다.


소포클레스는 아테네의 부유층 출신으로 많은 국가 요직을 거쳤고 장군 직에 두 번이나 임명됐다. 위대한 펠리클레스와 함께 국사에 종사했고 시인으로서도 90세 가까이 걸작을 계속 써서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방면에서 누구보다도 아테네의 황금시기를 만끽한 ‘그리스 비극의 완성자’였다.

에우리피데스는 아테나 상인의 자식으로 공직에는 임하지 않았고, 살라미스 섬의 동굴을 서재로 삼아 은둔생활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여자를 싫어하고 사람을 싫어했으며, 합리주의자, 불가지론자, 무신론자였다는 평가를 받은 중층적인 인물이었다. 에우리피데스는 운명의 부조리에 맞서는 보통 인간에 주목한 시인으로, 언제나 소외 계층의 사람, 시민이 아닌 사람, 여성 등을 다루어 '탈중심화'를 꾀했다. 뒷날 니체는 그를 '비극의 파괴자'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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