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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적, 눈에 보이는 적고봉진/수필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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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2.27  16: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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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병원마다 환자가 넘쳐나도록 인플루엔자가 유행하고 있다. 이번 인플루엔자바이러스 유형(類型)은 A형 두 가지(H1N1과 H3N2)와 B형 한 가지가 차례로 유행하고 있어 한번 걸렸던 환자가 다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부터 접종된 인플루엔자 백신은 이 세 가지 유형에 다 유효하며, 항바이러스제도 이미 확보되어 있다. 따라서 예방 접종을 한 사람들은 병원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비교적 가볍게 이 인플루엔자를 극복하고 있다. 그렇다고 자기 평소 건강을 유의해야지 너무 방심해서는 안 될 상태인 것은 물론이다.

기원전 430년 그리스 아테네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역병이 창궐했다. 그 전해부터 스파르타와 전쟁 중에 있던 아테네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시의 중심으로 전 주민을 피난시켜 농성 중이었다. 이 역병으로 전 시민의 3분의 1이 넘는 10만 정도의 사람들이 사망했다. 이 농성전을 주도한 장군 펠리클레스도 그 다음 해 같은 병으로 희생되어 아테네의 통치력은 현저히 약화되었지만, 이 병의 높은 사망률이 오히려 타 지역으로의 확산을 저지해, 그 당시의 세계적 유행 즉 범 지중해적인 대유행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이 역병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다. 대체로 페스트라고 짐작해 왔었는데, 21세기에 들어와서야 2006년 아테네대학 연구팀이 약2500년 전의 공동 묘지에서 발굴한 시체의 치아를 통해 이 병원체가 장티푸스 균임을 확인했다. 요즘 같으면 물론 거의 퇴치가 된, 별 문제도 되지 않는 유행병이다.

1차 세계대전이 종전되던 해인 1918년에서 그 다음 해 1919년에 걸쳐 크게 유행한 인플루엔자바이러스A형(일명 스페인 독감)도 당시에는 그 정체를 잘 알지 못했다. 인류 역사상 범유행(pandemic)을 한 질병 중에서 최소 5000만에서 최대 1억으로 추정되는 가장 많은 사망자를 냈던 병이었으나, 그 당시에는 전자현미경이 없어 병원체가 무엇인지 특정할 수 없었다.

당시 전 세계 인구 16억 가운데서 약 3분의 1인 5억 명이 감염되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평균 사망률은 10 %에 달해 사망자 수가 전 세계 인구의 3-6%에 이른 무서운 질병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병을 무오년독감(戊午年毒感)이라고 하는데 총 인구 약 1700만 명 중에서 740만 여명이 감염되어 14만여 명이 희생되었다. 당시미국에서는 전 인구의 28%가 감염되었다고 추정되며, 적어도 5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일본에서는 당시 39만 명이 사망했다고 발표됐으며, 프랑스에서는 4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러한 수치는 유행병뿐만 아니라 전쟁과 재해 등 모든 사람의 사인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단기간에 죽음에 이르도록 한 최악의 기록적인 재난이었다.

1931년 최초의 전자현미경이 실용화된 이후 1933년에야 1918년의 인플루엔자바이러스 병원체가 그때 채취된 인플루엔자 환자의 혈청 속에 있던 항체를 통해 1930년대에 유행하고 있던 인플루엔자바이러스A형과 유사한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고, 1997년 알래스카주 동토에서 발굴된 4구의 시체에서 폐조직 검체를 채취하여 바이러스게놈을 분리함으로써 드디어 1918년에 유행한 ‘스페인 독감’의 병원체가 인플루엔자바이러스A형(H1N1)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인류가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것 같이 어렵고 두려운 것은 없다. '손자(孫子)'라는 손무(孫武)의 병법서를 읽어보면 군략(軍略)만을 논한 책이 아니고 인간만사에 교훈이 되는 가르침이 적지 않다.

'모공(謨功)편'에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적정을 알고 동시에 내 힘도 아는 경우에는 전쟁에서 패하는 일은 없다. 적정을 모르고 자기 군대의 실정만 알고 전쟁을 할 때는 승패는 반반이다. 적정도 모르고 자기 군대의 사정도 모르면서 전쟁을 하는 자는 싸울 때마다 패망의 위험을 수반한다(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

전자현미경과 컴퓨터를 장악한 인류가 지피지기(知彼知己)를 통해 고대부터 전해 내려온 인류 최악의 시련인 각종 병원체의 정체를 밝히고, 그 저주에서 벗어나는 길을 개척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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