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에 대한 재인식
르네상스에 대한 재인식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3.0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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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진/수필문우회 회장

스위스 역사학자 부르크하르트(Burckhardt 1818~1897)는 유럽을 중심으로 한 역사의 시대구분 개념으로 ‘르네상스’라는 학술용어를 그의 저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1860년)’에 처음 사용했다. 부르크하르트는 독일어 사용권인 바젤 출신이었기 때문에 독일어로 이탈리아 문화를 기술했으나, 독일어도 아니고 이탈리아어도 아닌 ‘Renaissance’라는 프랑스어를 중세와 근대를 잇는 한 시대를 지시하는 용어로 굳이 사용한 것은 프랑스 역사학자 미슐레(Michelet 1798~1874)의 영향을 받아서이다.


미슐레는 1827년 29세의 젊은 나이로 고등사범학교 역사학 교수직에서 출발하여, 파리대학(소르본) 교수를 거쳐 ‘콜레쥬 드 프랑스’ 교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역사서를 저술했다. 원래는 왕당파 겸 가톨릭을 지지하는 보수파였지만 1830년 7월혁명을 계기로 공화정을 추구하는 자유주의자로 전향했다. 루이 필리프가 ‘프랑스 국민의 왕’이란 이름으로 통치를 할 때는 그 보수체제를 비판했고, 1848년 2월혁명이 일어나자 열광적인 지지자가 되었다. 1852년 나폴레옹 3세의 제2제정이 시작되고 모든 국립대학 교수는 황제 앞에 나가서 직무에 충실하겠다는 선서를 해야 했으나, 미슐레는 이를 거부해서 대학 교수직에서 해임되었다. 그 뒤로는 임종할 때까지 22년 동안 다시 교단에 서지 않고 저술활동에만 전념했다.

방대한 프랑스사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저술 출간했는데 1855년에는 16세기 프랑스역사 ‘르네상스편(La Renaissance)’과 ‘종교개혁편(La Réforme)’ 두 책을 간행했다. 미슐레는 ‘르네상스편’에 해당한 시기에 이루어진 ‘문화의 재생’을 취급하면서 전 유럽에서 그것이 어떻게 시도되고 성취되었나 하는 것을 자세히 살피고 분석했다. 그의 역사 기술은 종래의 역사학자들과 같이 중요 인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사회의 다수를 형성하는 민중의 움직임을 포착해서 그것을 생생하고도 자세하게 기술하고자 노력했다.

부르크하르트는 미슐레의 합리적이면서도 고매한 인품을 존경했고, 전 유럽을 시야에 넣고 다루는 연구방식에 크게 공감을 했다. 그렇게 해야 르네상스의 특이성이 명백해진다.

그 기본자세는 16세기 이탈리아 겸 건축가 그리고 저술가였던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가 취한 자세이기도 했다. 바사리는 피렌체 메디치가의 궁전 ‘우피치궁(지금의 우피치 미술관)’을 설계하고 많은 그림과 조각도 제작했지만 그가 역사상 불멸의 이름을 남기게된 최고 걸작은 1550년에 출간한,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한 200여명에 이르는 ‘예술가 열전’이었다. 그 책의 정식명칭은 ‘이탈리아 최고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의 생애’이다. 출판을 하자마자 개정 작업을 시작, 이탈리아 전국을 돌며 취재해서 1568년에 개정 결정판을 냈다. 그가 남긴 이 ‘예술가 열전’은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가장 생생한 목격 기록으로, 후세의 미술사가들로부터 큰 찬사를 받고 있다.

바시리는 책의 서문에서 고대의 재생을 논하며 당시의 시대를 규정짓기 위해 르네상스라는 이탈리아어 ‘Rinascimento’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현재 우리가 쓰는 ‘르네상스 시대’ 라는 역사적 개념이라기보다는, ‘고대 그리스 문화가 재생했다’ 라는 단순한 의미였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이탈리아 각지에서 야만족들이 일어나서 로마 대제국이 붕괴되고 전 세계와 로마시가 폐허로 되었다. 또 새로운 세력인 그리스도 교도들이 예술적으로 훌륭한 입상이나 조각을 이단의 상징물로 간주해 마구 파괴해 버렸다.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이제 고대를 부흥시켜야 할 희망과 약속으로 가득 찬 새로운 시대에 서 있는 것이다”

부르크하르트는 그와 동시대의 사람인 미슐레의 역사학적 방법, 그리고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의 탁미를 장식한 바시리의 업적을 토대로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에서는 다른 나라와 비교도 할 수 없는 비약이 있었다고 보았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야말로 근대의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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