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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와 러시아고봉진/수필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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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19  14:3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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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태의 추이에 온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어디서 많이 보아온 일이고 그 귀추가 뻔한 일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되어 갈지 자못 궁금하다.

1783년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에 속해 있던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흑해 연안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이 지역에 들어와 있던 우크라이나인과는 별도로 러시아인의 정착이 활발히 진척되었다. 19세기 들어와 두 차례에 걸친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 뒤이은 크림전쟁 그리고 2차 대전에서의 독일군과의 처절한 격전 등,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획득하고 유지하는데 수 세기에 걸쳐 투입한 막대한 희생과 노력에 비해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크림반도가 누가 보아도 너무 허술하게 우크라이나 영토가 되었다.

소비에트연방을 이끌고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나치군의 침공을 저지하고 승리하여 동유럽을 거의 제압한 스탈린이 1953년에 갑자기 사망했다. 그의 뒤를 이은 말렌코프를 같은 해에 밀어내고 흐루쇼프가 소비에트연방의 국가원수 겸 공산당 서기장에 올랐다. 그는 집권하자 스탈린을 비판하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와 공존을 모색했다. 같은 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1653년 체결했던 합병조약 300주년 기념일을 맞아 크림반도를 러시아공화국 영토에서 우크라이나 공화국 것으로 넘기는 선심정책을 베풀었다. 우크라이나 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라는 자리를 발판으로 출세하여 소련의 최고집권자의 자리에 오른 것에 대한 감사의 정을 표현한 것이겠지만 물론 소비에트 연방이 건재할 때는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름만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1991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좌초하면서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자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크림 반도가 실질적으로 우크라이나 공화국 영토가 되었다. 그때 러시아는 옐친이 이끌고 있었으나 크림반도에 집착할 여유가 없었다. 러시아는 지금도 크림반도 최남단에 있는 항구 세바스토폴을 우크라이나로부터 유상조차해서 흑해함대 본부기지로 사용하고 있다.

결국 오늘의 크림사태는 흐루쇼프가 그 분쟁의 단서를 마련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인은 세계에서 가장 비옥하다는 평판이 높은 흑토지대에서 농경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제정러시아 시절에는 우크라이나 농민들이 전 러시아에 곡물을 공급하고도 남을 정도로 높은 생산량을 자랑했지만, 그들에 대한 지주부농 쿨라크(Kulak)의 수탈도 극심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농민들은 러시아 혁명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혁명대열에 참여했다. 그러나 혁명이 점차 진전되자 농민들은 부농을 중심으로 반혁명으로 돌아섰다. 혁명 덕에 겨우 자기 토지를 갖게 된 농민들이 농지의 집단농장(Kolkhoz)화에 반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격한 중공업산업화 자금을 농산물 수출로 조달하려는 스탈린에 의한 강압적인 시책으로 1932년에서 19933년에 우크라이나에서는 대기근(Holodomor)이 발생했다. 이 기근은 사회기반시설의 붕괴나 전쟁 등으로 야기되지 않고 정치적, 행정적 시책에 의하여 발생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나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는 이 사건을 공식적으로 '대량학살'로 규정하고 있다.

1921년에서 1922년 레닌의 잘못된 지도로 혁명 초기에 발생한 기근과 합해서 우크라이나에서 이 두 기근으로 죽음에 이른 사람 수가 약 800만 명에서 최대 10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작년 연말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던 레닌 동상이 데모 군중에 의하여 파괴된 것도 까닭이 없는 일이 아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는 동유럽의 곡창이다. 러시아가 힘의 논리로 마구 대해도 좋을 나라는 아니다.

이러한 원한을 지닌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구 소비에트 연방이 책임져야 할 짐을 또 하나 지고 있는 것이 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현장이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구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 배치했던 핵미사일 176기와 핵 탄두 1800기를 우크라이나가 폐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할 때, 미국, 영국, 러시아 3개국이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을 담보하는 조약을 채결했다. 이 조약도 아직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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