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유감
감기 유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3.2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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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며칠 전 남편이 감기가 들었다. 정말 지독한 감기였다. 처음에 허리가 아프다며 집안에서 움직일 땐 거의 기어다니다시피해서 척추에 이상이 생긴 줄 알고 놀랐다. 아픈 부위를 자세히 말하라고 했더니 엉덩이 윗쪽 근육이 전체적으로 아프다는 것이었다. 우선 척추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척추라면 늙고 젊도 않은 나이에 낭패지 않은가. 그리고 남편에게 감기몸살이라고 진단해주었다. 나는 20대 후반에 정말이지 온몸이 옥신옥신 쑤시며 아픈 몸살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대번 알 수 있었다. 왜 하필 허리 부분의 근육만 아픈 까닭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감기몸살이 된통 걸린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아무리 정확한 진단을 해주었기로서니 아픔이 가시진 않는 모양, 남편은 밤새 끙끙거리더니 날이 새자마자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타왔다. 주사는 단박약이었다. 바로 일을 하러갔다. 도중에 괜찮냐고 전화를 해서 물었더니 “와아, 그 주사가 좋네, 완전히 나았어”라며 기뻐하던 것이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주사의 약발이 다 떨어지자 “그 주사약이 마취제였던 모양이야”라며 또 아프다고 빌빌거리는 게 아닌가. 일정 부분 분명 엄살이 끼었기에 밉상스럽기도 했지만 걱정이 무거웠다. 감기가 아니고 무슨 큰 병이라도 걸렸으면 어쩌지 하는 방정스런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또 남편을 진단하기 시작했다. 어제보다는 상태가 좋아지고 있는지 똑 같은지 그도 아니면 더 나빠지고 있는지가 진단의 관건이었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있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행히 남편은 “어제에 비하면 많이 나았지”하면서도 오만상을 찌푸렸다. 나는 “그만해, 약 먹고 자고 나면 거뜬해질 거야!”하고 퉁박을 주었다. 정말로 자고 난 다음 날엔 남편은 정상을 되찾았다.

저녁에 학교에서 돌아온 딸 아이가 “엄마, 아빠 감기가 나한테 왔어!”라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맙소사, 딸아이는 막내로 엄살이 장난 아니다. 어서 병원으로 가서 주사를 맞고 오라고 일렀다. 아이들이라 그런지 주사를 맞고 오더니 금방 좋아졌다며 엄살은 피우지 않았다. 다행이라 여기며 딸을 관찰했다. 병원 갔다 온지 한 시간쯤 지나자 열도 깨끗이 내렸다고 해서 안심했다.

다음 날 나는 남편과 아이를 약을 챙겨 먹여 보내고 천천히 하다만 아침식사를 마저 하는 중이었다. 머리가 아주 미세하게 아팠다. 미세하지만 이쪽이 아팠다 저쪽이 아팠다 온 머리가 골고루 아팠다. ‘가만, 이 이게 남편 감기가 나한테?!!’ 알아차리기 무섭게 바이러스가 온몸에 퍼져가는 게 느껴졌다. 양쪽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프다 싶더니 팔 근육이 욱신거린다, 종아리가 아팠다, 발가락이 욱신거린다, 해서 온 몸이 아프고 욱신거렸다. 금새 온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열이 나자 어질어질 한기까지 겹쳤다.

인류의 마지막 적은 바이러스가 될 것이란 어느 학자가 한 관측이 떠올랐다. 견딜 수가 없어 급하게 약국에서 약을 사다 먹었다. 병원엘 갈까도 생각했지만 남편이 큰 병이 아니고 몸살감기였다면 나는 병원에 안 가도 될 것이라고 자가진단을 하고 견디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이나 나나 우리 부부는 병원신세를 잘 안지다 보니 약발 하나는 잘 받았다. 약 한 알을 먹었더니 인류 마지막 적 감기도 별거야, 운운. 구시렁거리며 하루를 보냈다. 웬걸, 이제 기침까지 나온다. 기침을 할 때는 온 내장이 다 딸려 나오는 줄 알겠다. 어제 나도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을 걸 하는 후회가 무겁다. 과일을 이것저것 넉넉히 사다놓고 먹는 중이다. 문제는 과일의 단맛은 물론이고 아무런 맛을 못 느끼겠다. 쇠고기를 넣고 끓인 미역국을 평소 좋아해서 끓였는데 그마저 맛을 모르겠다. 약을 먹기 위해 이것저것 먹고는 있지만 진짜 죽을 맛이다. 글을 쓰는 지금, 팔뚝이 욱신거리며 아프다. 무슨 이런 감기가 다 있는지.

나는 감기를 조심해왔다. 아침저녁으로 세수할 때 나만이 하는 일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코청소인데 콧구멍으로 소금물을 넣어 씻어내고 목구멍에도 넣어 가글을 해서 뱉어내는 일이다. 소금물을 넣을 수 있는 병이 있어야 되겠는데 약국에서 구하면 된다. 아이들 시럽 병이 딱이기 때문이다. 끝이 뾰족하고 병이 부드러워 소금물을 짜 넣기가 좋다.

그런데 가족이 병균을 옮기는데는 이렇게 속수무책 당하는 수밖에 용빼는 재주가 없다. “쓸데없이 독감이나 옮겨주고….”라며 남편에게 눈이나 흘긴다. 남편은 “주사를 맞으라니까 고집을 피워놓고선 누굴 나무래….” 회사에서 감기가 들었다며 거의 한 달을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한테 두어 번 가까이 얘기를 했더니 그런 모양이네. 못내 미안한 표정이다. 독자님들! 모쪼록 감기 조심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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