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
에피쿠로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3.2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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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진/수필문우회 회장
▲ 고봉진 수필문우회 회장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까지 그리스 폴리스들은 마케도니아의 지배 하에 들어가 자치권을 상실한다. 더 이상 폴리스적인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지 못한 시민들 사이에는 개인주의적, 도피주의적 사고나 생활을 지향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기원전 341년 사모스 섬에서 아테네 시민의 자식으로 태어난 에피쿠로스는 한 때 데모크리토스 학파의 후계자 나우시파네스로부터 원자론을 수강 받는 등 여러 과정을 거친 후, 기원전 307년 아테네에 나와서 ‘정원(庭園)’이라고 호칭되는 제자들과의 공동생활 장소를 겸한 학원을 연다.

에피쿠로스는 유일 최고의 선은 쾌락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육체적 물질적 쾌락주의자는 아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가운데 에피쿠로스만큼 방대한 철학체계를 일관되게 갖추고, 합계 300권이 넘는 많은 저작물을 남긴 철학자로 전해지는 사람은 드물다. 디오게네스 레에르티오스의 '그리스 철학자 열전' 10권 가운데 플라톤에게 제3권, 에피쿠로스에게 제10권을 단독으로 배정했는데, 에피쿠로스에 대한 기술분량이 플라톤보다 25% 정도 더 많다.

그의 철학체계는 인식에 관련된 규준론(規準論)과 자연학, 그리고 윤리학의 세 부문으로 나누어지나, 이 세 부문은 긴밀한 일체를 이룬다. 규준론은 전 체계의 도입부분이 된다. 그는 경험주의 입장에서 연역적, 논리적 사고에 반대하고 감각을 신뢰하여, 어떤 사물의 진위(眞僞)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감각을 내세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의 실재(實在)는, '눈 앞에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감각에 의하여 확증(確證)이 이루어지면 참(眞)이고, 확증이 되지 않으면 거짓(僞)이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반증(反證)이 성립하지 않으면’ 참이고 ‘반증이 성립하면’ 거짓이다.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감각으로 파악되는 세계에서는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원자들이 빈 공간 속에서 수직적인 운동을 무한히 되풀이하고 있다가, 몇몇 원자들이 그 운동 방향을 자발적으로 이탈해서 다른 원자들과 충돌을 하게 되고, 그 결과로 원자들이 서로 결합하여 만물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세계관은 유물론이다.

에피쿠로스의 윤리학도 감각이 실재를 좌우한다고 보았으니, 무엇이 최고선이냐 하는 것에 대한 결론은 쉽게 나온다. 그는 신체에 즐거움을 지치거나 싫증이 나지 않게 계속 공급하여 얻는 쾌락보다는 신체에 고통을 없게 하여 도달하는 마음의 평정(平靜), 즉 “아타락시아”에 의한 쾌락이 더 획득하기 쉽고 지속 가능성도 높다고 보았다. 그가 이성 간의 사랑보다도 우정을 더 높이 평가한 까닭도 ‘마음의 평정’에 어떤 쪽이 더 적합할까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가 죽음은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한 것도 자신의 감각관에 따른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감각도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살아있을 때처럼 죽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두려움이다.

에피쿠로스는 흔히 무신론자였다는 오해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신의 존재를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지녔고 신전 참배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신은 인간사에 관심이 없고, 인간을 심판하거나 인간의 길흉을 주관하지도 않는다고 믿었던 것 같다. 신이야 말로 언제나 ‘평정’ 가운데 머무는 존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유럽 역사에서 기나긴 중세가 저물고, 각 나라별로 르네상스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가장 주목받고 널리 읽혀진 철학서가 에피쿠로스의 철학사상을 라틴어로 읊은 루크레티우스의 서사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였고, 앞에서 인용한 '그리스 철학자 열전'속의 에피쿠로스 편이었다.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에서는 몽테뉴가 《에세》를 쓸 때 에피쿠로스의 철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르네상스 이후에도 에피쿠로스는 비중 있게 평가된다. 19세기 중순에는 마르크스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자연철학의 차이점'을 썼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의 유물변증법 철학에서는 에피쿠로스가 고대그리스 철학자 중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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