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다행한 복수
참 다행한 복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4.0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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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나는 늦게 결혼해서 아이도 늦게 두었다. 아들을 먼저 낳고 딸을 낳았다. 장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키웠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바쁘고 서툴렀다. 바쁘고 서툰 것은 언제나 화를 동반한다. 이 골칫덩어리 화라는 것이 아이들에게로 향하면 여지없이 ‘매’를 부른다. 아이를 때리게 된다. 아이를 때리는 건 참으로 큰 죄악이다. 이 중요한 사실을 아이가 다 크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아름다운 봄날에 무거운 죄의식으로 우울하다. 우울하다 보니 많은 걸 이해하게 된다. 우선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많은 이름 모를 여인들에게 미안하다. 여태는 누군가 우울하다거나 우울증을 앓는다고 하면 겉으로는 마지못해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도 속으론 그들을 나무랐다. 어리석어서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헷갈리는 인생을 살게 되고 우울하게 되는 것이라고. 나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야무지게 확보해서 인생을 살아봐라, 우울증이 올래야 올 수가 없다. 인생이 얼마나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배가 부르고 할 일이 없으니….어쩌고 하며 속으로 이죽거렸다. 이제사 진심으로 사과하는데 많은 우울한 사람들아, 이렇게 괴로워하는 걸 봐서라도 나의 무지를 용서하시길….

매를 아끼면 아이를 버린다는 출처가 불분명한 속담을 어디선가 줏어들은 나는 그것을 신봉했었다. 아이가 잘못하면 손바닥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때렸다. 가장 잊혀지지 않고 잊어서도 안 되는 날은 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1시면 와야 되는 아이가 안 오자 걱정을 하면서도 오겠지 오겠지 하면서 3시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다섯 시가 되어도 아이가 오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학교로 아이를 찾아 나섰다. 아이는 학교에 있었다. 그 시간까지 복도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놀고 있었다. 그냥 놀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수업 시작 전 아침 자습 시간에 하라는 한문 쓰기를 하다마다 하면서였다. 공책 한 페이지에 여섯자의 한자를 쓰는 일이었는데 우리 아이는 세 줄을 쓰고는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정신이 획 돌아서는 네 시간을 아이를 공포 속에 잡았다. 이후 아이는 이유 없이 하교 시간이 늦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천성이 느리고 게으른 성격은 이후로도 수시로 매를 불렀고 나는 때렸다.

큰 아이는 안타까울 정도로 느렸다. 매사에 느리고 서툰 행동을 자세히 관찰했더니 게으름과 연관되어 있었다. 게으름은 아이들 아버지의 부분적 정체인데 나는 그 점이 너무도 싫었다. 아들인 큰 아이가 성장해서 어른이 되어 아내에게 사랑받지 못할 것이고 그 아내를 고생시킬 것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속된 말로 미쳐버리는 것이었다.

두 아이들은 아주 힘겹게 엄마를 견뎠다. 나는 아이들이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공포 속에서 엄마의 매를 견뎠다는 걸 불과 한 달 전에 알아차렸다. 두 아이가 차례로 공포를 견딘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나는 나의 죄를 보아야했던 것이다. 큰 아이는 여성 혐오증에 걸렸다. 향후 결혼이 불투명하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다. 작은 아이는 심한 불안증 때문에 조금만 관찰과 관심을 소홀히 하면 바로 몸이 아프다. 감기를 한다든지, 정히 안 되면 자해를 해서라도 관심을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 큰 아이에 비해 다소 가벼운 증세이기는 하지만 키우기 괴로운 건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두 아이들에게 용서를 빈다. 요 며칠은 혼자 있을 때마다 울면서 괴로워했는데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아 이제 울지는 않기로 했다. 죄의식에 괴로워하며 울다가 보니 몸이 너무 지쳐서 내 건강을 해치면 오히려 아이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었다. 이제야 말로 건강하고 진정한 사랑만으로 그들의 성장을 후원하기로 했다. 다시는 화를 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눈도 흘기지 않고 그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보살피기로 했다. 아울러 내 아이들 뿐만 아니라 생명 가진 모든 님들은 오직 존중하며 신기해하며 사랑하기로 했다.

그래도 문득문득 후회와 회한이 밀려들면 이렇게 우울하다. 생명을, 게다가 내 자식을 공포속에 몰아넣은 내 자신이 참을 수 없이 증오스럽다. 그러나 한편으로 돌이켜보면 나도 가엾은 생명이지 않은가. 우울해만 하지 말고 스스로 겸손해지는 데에 우울증을 약으로 삼아야겠다. 사랑스런 생명들아! 부디, 팍팍한 인생 사느라 고생하는 줄 알지만 제발 아이들은 때리지 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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