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그랬어?
고래가 그랬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4.03 10: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영/소설가

‘고래가 그랬어’는 잡지다. 어린이들이 보라고 만든 잡지다. 그런데 어른이 읽으면 더 좋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잡지를 칭찬하는 날로 정했다. 내가 이 잡지를 처음 발견했을 때, 흔히 하는 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흔히 하는 말이라고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어떻게 잡지가, 게다가 어린이들이 보는 잡지가 이렇게 다양하고 심도 있고 전문적이면서도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고….


오늘의 칭찬은 고래가 그랬어(이하 고래) 제 124호를 기준으로 차근차근 해보기로 하겠다. 제일 먼저 길고양이 이야기. 4~6학년 학생 7명이 모여서 길고양이에 대해 그야말로 편하게 얘기를 한다. 사람 마음은 다 거기서 거기다. 아이들의 마음도 거기서 거기인 듯.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길고양이가 불쌍하다는 이야기다. 불쌍하지만 함께 살 수도 없다. 왜냐하면 지저분하니까. 대책이 있을 리 없다. 다른 길짐승들 얘기도 나왔다. 역시 대책이 없다. 결국 이 세상엔 사람만이 남을 거라는 쓸쓸한 이야기로 끝난다. 나도 조금 쓸쓸하다.

‘덩치는 산만 해 가지고’ 나는 이 제목을 보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덩치가 산만하다는 줄 알았다. 시끄럽고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이르는 말인 줄 알았는데 덩치가 산만큼 크다는 얘기다. 도시의 빌딩이 산처럼 크다는 건데 실제 그렇잖은가. 서울 중심가의 빌딩들을 보면 정말 거대하다. 책에서는 두 페이지에 걸쳐 빌딩의 모습으로 회사 규모가 지난 4년 동안 2.5배 늘어난 반면 거기서 일하는 사람은 고작 1.3배 늘어나는 걸로 그쳤다는 걸 표현했다. 흥미로운 건 빌딩의 뿌리가 사람으로 되어있다. 나는 조금 쓸쓸하고 조금 놀랍다.

아이들의 잡지에 만화가 빠지면 앙꼬 없는 찐빵! 고래에도 만화가 대따 많다. 제일 필이 꽂히는 건 제목도 없이 바로 들어가는 흑백만화다. 좋은 아이디어를 교활한 대기업에 빼앗기고 결국 하청업체로 전락하는 이야기인데 그 일로 가출한 아빠를 찾는 눈이 큰 아이의 이야기다. 눈이 커서 그 아이를 보면 나도 더 슬프다.

다음은 ‘삐꾸 래봉’이다. 반반하게 생기고 키도 큰 반장이 순하고 작고 착한 아이를 괴롭히는 ‘평범한 이야기’. 사실은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다. 강한 아이가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얘기는 결코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아무리 일상적이고 아무리 자주 괴롭힘을 당한다고 해도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떻겠는가. 괴로움이나 고통은 당하면 당할수록 공포가 더해질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수많은 약자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얼마나 무서울 것인가. 말 그대로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 너무 맘 아프다.

아, 드디어 이 놀라운 이야기를 해야 하는 때다. 바로 ‘별맛 일기’!! 이 이야기가 어떤 내용인지 결론부터 빨리 말해버리자. 동성애 이야기다. 세상에, 잡지에서 동성애 이야기를? 게다가 어린이 잡지에서? 놀랍고 놀랍다. 그런데 너무 예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이 역시 너무 고운 이야기다. 그리고 이렇게 놀라서 동성애자들한테 미안하다. 동성애도 이성애나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삶일 뿐인데 잡지에서 얘기한다고 놀라고 호들갑 떨어서 죄송하다. 꽃 중에도 민들레가 있으면 장미도 있고 엉겅퀴도 있고 에델바이스도 있고…. 도대체 내가 알지 못하는 꽃들이 아주 많이 있듯이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선입견 없이 인정하고 인식하고 나아가 사랑하기로 살아보자!!

내가 이팔청춘일 때 ‘서편제’라는 영화를 봤다. 그리고 좋은 영화라면 찾아서 봤다. 바보들의 행진, 고래 사냥, 무릎과 무릎 사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동막골…. 인상적인 장면만 기억되는 수많은 영화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인생을 걸고 찾아내 우리에게 보여주는 인류애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또한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소설가가 되기를 구체적으로 꿈꿨다. 책을 이제 본격적으로 읽는데서 더 나아가 전문적으로 읽기 시작. 책 세상의 그 넓이와 깊이라니.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는 예술가들이 구체적으로 감사하다. 예술가가 없는 삶은 생각하면 끔찍하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삶은 그것 자체로 이 세상을 위한 헌신이고 봉사다.
그들이 있어 행복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