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명소로 각광받는 남해유배문학관(1)
관광명소로 각광받는 남해유배문학관(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8.31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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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대우/전 남해문화원장
대한민국 최초의 남해유배문학관(관장, 김성철)이 탄생. 유배문학 성지로서의 입지가 굳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배문학의 재조명을 통한 국문학 발전에 기여하고 유배문학과 관광을 연계한 관광인프라는 물론  유배문학의 산실로 크게 평가받고 있으며 또한 새로운 역사교육장과 관광명소로 날로 급부상, 각광을 받고 있다.
남해군은 전국에서도 처음으로 이 같은 유배문학관을 건립해 관광자원화와 함께 유배문학 성지로 만들어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시설로 유배문학을 재조명하는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곳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남해유배문학관이 개관 1주년을 앞두고 있는 현시점에서 관람객만도 무려 4만여명에 이르고 있는가 하면 오는 11월1일 개관 1주년시에는 5만여명의 관광객들이 찾아들 것으로 예상 유배문학 성지로서의 입지가 완전히 굳혀지고 있다.
한 맺힌 남해 유배세월 재조명과 함께 주옥같은 문학작품을 남긴 인물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 전국 각 도처에서 일반 관광객들은 물론 수학여행 오는 학생들의 역사공부에도 크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남해에 귀양 온 유배객은 고려시대에 7명, 조선시대에 181명으로 모두 188명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남해로 귀양된 유배인들은 대부분 단순한 죄인이 아니라 정적(政敵)과당쟁(黨爭)의 피해자들이라고 한다.
이중 주옥같은 문학작품을 남긴 여섯 명으로는 자암(自菴)=김구(金絿)선생을 비롯한 약천(藥泉)=남구만(南九萬), 서포(西浦)=김만중(金萬重), 소재(疎齋)=이이명(李裏命), 후송(後松)=유의양(柳義養), 태소(太疎)=김용(金容)선생 등이 있다.
한국의 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어 위대한 업적을 남긴 동시에 본인들 자신은 고뇌와 비탄과 울분의 세월을 보내면서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을 넘나들었던 당대의 걸출한 인물들이였음을 생각해 볼 때 이 인물들의 영혼이 살아 숨 쉬는 현장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보아 다시금 이들을 재조명해 보고자 남해에다 유배문학관(명예관장, 설성경)을 건립하게 됐다.
남해군은 전국 최초의 유배문학관 건립을 위해 총 사업비 138억원을 투입, 지난 2006년부터 5년간 심혈을 기울인 결과 남해읍 남변리 우회도로 앞 건립부지 3만5469㎡, 건축 연면적 2416㎡ 규모로 건립된 것이다.
조선시대 때에는 제주, 거제 등과 더불어 남쪽의 대표 유배지였던 남해에는 김만중 외에도 조선 후기 문신이었던 후송 유의양, 조선 전기 4대 서예가로 이름을 날린 자암 김구, 약천 남구만 등 조선시대 이름을 날린 여러 문장가들이 유배생활을 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남해로 온 유배객은 약 200여명으로 이들 유배객들은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화전별곡’ ‘구운몽’ ‘사씨남정기’ ‘남해문견록’ 등 빛나는 유배문학 작품 등으로 후대에까지 남겨왔다.
유배지의 역사를 현대의 시각에 맞게 재해석하고, 타 자치단체에 앞서 ‘절망 속에서 핀 꽃, 능절(凌絶)의 미학’인 유배문학이라는 아이디어를 선점해 관광자원화 하겠다는 남해군의 야심찬 계획이 선보이게 된 것이다.
남해유배문학관은 향토역사실, 유배문학실, 유배체험실, 남해유배문학실의 4개의 전시실과, 다목적강당, 수장고, 유배문학연구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야외에는 행사마당, 야외조형물, 초옥, 팔각정, 시비, 산책로 야외 전시체험장으로 다양하게 꾸며져 있어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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