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기막힌 세월
아, 이 기막힌 세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4.2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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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창원대 교수·시인

멋도 모르고 이 세상에 태어나 인생이라는 것을 살게 되었는데 살다보니 참 별의별 일들을 다 겪게 되었다.


내가 태어난 시점은 1950년대 중반이라 비교적 세상이 평화로운 편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는 일본이 나라를 집어삼키고 36년간 식민지로 지배하다가 소위 해방이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더욱이 나라가 둘로 쪼개져 대립하다가 전쟁이 일어나 3년간 피바람이 분 뒤 휴전으로 겨우겨우 총성과 포연이 멎은 직후였다. 인생을 막 시작한 내 삶의 주변에는 식민지배와 남북전쟁의 흔적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어린 시절이란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아름다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삶의 여건이란 것은 참 비루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 세월을 보내며 우리는 4·19를 겪었고 5·16을 겪었고 좀 나이가 들어서는 10·26, 12·12, 5·18을 겪었다. 또 IMF라는 국가적 치욕도 경험했다. 이런 단어들을 다시금 떠올리면 나는 가슴이 바위처럼 딱딱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언어의 상실에 빠져든다.

그와 더불어 우리는 또 한 가지 일련의 사건들을 마주했다. 1970년 서울에서 와우아파트가 무너졌다. 1971년에는 대연각호텔이 불길에 휩싸였다. 1993년에는 서해페리호가 침몰했고 1994년에는 성수대교가 끊어졌으며 1995년에는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다. 2003년에는 대구지하철이 불질러졌고 바로 얼마 전에는 경주리조트의 건물이 폭삭 내려앉았다. 엄청난 생명들이 희생되는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재난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또 일어났다. 그때마다 세상은 떠들썩했지만 이런 식의 후진적 사고는 이 한심한 세상에서 도무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인근의 맹골수도에서 476명이 탑승한 세월호가 침몰하는 대형사고가 또 발생했다. 꽃다운 나이의 학생들이 수백명이나 배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 이 땅에서 어른으로서 숨을 쉬고 있다는 자체가 부끄럽다. 하나씩 들려오는 소식들을 보면 너무나 기가 막혀 그야말로 ‘멘붕’이다. 가히 어처구니없는 일들의 종합판이다. 참담하기가 이를 데 없다. 무엇보다도 압권인 것은 그 순진한 아이들이 탈출도 못하도록 “객실에 있어라”고 오도한 안내방송, 그리고 수많은 승객들이 죽어가는 그 와중에 배를 버려두고 가장 먼저 탈출해 구조되었다는 소위 선장이라는 사람이다. 물속에서 자동적으로 펴지게 되어 있는 구명보트는 어이없는 페인트 덧칠로 거의 봉합상태였고 그런 채로 안전검사에서 ‘양호’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너무나 너무나 기가 막혀서 나는 또 바위처럼 딱딱해진 가슴을 움켜잡고서 언어를 잃고 있다.

도대체 이 땅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 나는 존재론을 전공한 한 철학자로서 단언하건데 하나의 생명은 소위 ‘존재’라고 불리는 전체 우주 삼라만상의 담지자이다. 일체존재가 비록 그 자체적으로 요요히 열려 빛날지라도 그 모든 것의 의미는 생명과 더불어 비로소 개시되는 것이며 생명이 소실되면 일체의 의미도 함께 사라진다. 생명이란 하나하나가 우주 전체와 맞먹는 가치를 지닌다는 말이다. 인간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해서 우주선을 만들고 그것을 외계로 보내 생명의 흔적을 찾고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생명은 없지 않은가. 만일 달이나 화성에서 토끼나 혹은 풀 한포기라도 발견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우주적인 대사건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런 것은 없다. 그런데 … 왜 굳이 그것을 그 멀리서 찾는가. 바로 우리주변에 그 귀한 생명이 이토록 많이 있고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들이 바로 그런 생명이 아니던가! 그것을 우리는 지금 어떻게 취급하는가.

우리는 그 생명의 가치를 도대체 아는가 모르는가. 그 가치를 조금이라도 인식한다면 그것을 그렇게 많이 배에 싣고 위험한 바다로 나가면서 어떻게 그 배의 키를 어리고 미숙한 3등 항해사에게 맡길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이 모든 것이 이토록 엉망진창일 수가 있단 말인가. 생각이라는 것이 있는가 없는가. 양심이라는 것은, 책임이라는 것은 있는가 없는가. 저 캄캄한 바다 속으로 가라앉으며 그 무수한 아이들이 느꼈을 감당할 수 없는 공포를 생각하면 그저 억장이 무너질 뿐이다. 이 모든 엉터리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기가 막혀 더 이상 할 말도 없다.

이게 지금 우리가 인생을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꼬락서니다. 바야흐로 이 세상에 대한 근본적인 개조의 시대가 다가왔다. 그나마 희망을 갖는 것은 저 지옥 같은 조건 속에서도 구조를 위해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는 분명히 있다는 사실이다. 기대해보자. 그들처럼, 이 어처구니없는 세상이 조금은 달라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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