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인
그 여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4.29 16: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영/소설가

나는 이즈음 한 여인을 깊이 생각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안타까운 그 여인이 자꾸 생각된다. 내 아주 어린 날에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어쩐지 어쩐지 처다보기도 송구스러웠다. 그녀는 그렇게 그냥 높은 곳에 있는 그런 여인이었다. 그리고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그녀도 나이를 먹어갔다. 어느날 TV에 나와서 “저도 벌써 중년입니다”라고 말하곤 정치가로 돌아오는 걸 목격해야 했다.


그리고 또 20년이 넘는 세월이 훨쩍 지나가고 나는 초로에 접어들어 작가가 되었다. 이케다 다이사쿠라는 인생의 스승을 가슴에 품게 되었고 작가로 성장시켜준 문학의 스승인 조동선 선생님도 얻었다. 작가가 되었지만 나는 두 분 선생님 앞에선 말 잘 듣는 착한 제자일 뿐이다. 두 선생님은 이렇게 지도 하신다. 나쁜 권력에는 당당히 맞서서 싸워라고 인생의 스승은 말씀하신다. 문학적 선생님께서는 작가는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만연하는 속임수에 속지 않고 다른 사람도 속지 않도록 살펴야 하는 게 작가의 사명이고 사명에 투철하라고 가르치신다.

두 스승님 말씀은 언제나 옳았다. 이혼을 할까 말까 할 때도 선생님의 지도대로 하니 갈등을 줄일 수 있었고 갈등을 줄이니 살기가 훨 편해졌다. 작가로서 무얼 쓸 지 모를 때 스승의 말씀을 떠올리면 내가 써야만 하는 이야기가 바로 생긴다. 소설을 써나가는 중에도 막히면 스승의 가르침을 떠올리면 술술 쓸 글이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올바른 스승 두 분이 계셔서 언제나 감사하고 다행으로 여긴다.

그 여인은 환갑을 막 지났고 푸른 기와집으로 이사를 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이때부터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심하게 거북하다. 게다가 그 여인은 주요 공약으로 정당공천을 폐지하겠다고 하고선 약속을 어겼다. 어긴 약속에 대해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녀의 스타일인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넘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국정원장의 잘못이 백일하에 드러나자 직속 상급자인 그 여인은 여론에 밀려 “고위 공무원이 잘못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하겠다”고 하고는 큰 잘못을 세 번씩이나 한 국정원장을 또 그냥 봐주었다.

이제는 거북한 정도를 떠나서 참으로 부끄럽고 불쾌했다. 두 스승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스승을 떠나버릴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도 좀 이상한 할머니들처럼 어부렁 더부렁 TV에 나온 그 여인을 보며 “뒷태꺼정 이이뻐”라고 침을 질질 흘리며 늙어갈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면 속이 편하려나 말려나.

그러던 차에 진도 앞바다 참사가 났다. 요 며칠 나는 정말 트윗질도 못하고 그냥 한숨을 쉬다가 아이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사람이 구조됐다는 소식을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그 여인이 그 곳에 날아갔다. 에이포지를 돌돌 말아쥐고 그 곳에 있는 작은 그녀를 보자 미욱스러웠다. 구조가 급한데 왜 시간을 빼앗는가? 해서.

그래도 그 여인이 다녀갔으니 이제는 살아서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간절히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소식은 없이 일주일이 지나고 있었다. 나는 동네 어귀에 세워져 있는 덤프트럭을 꼼꼼히 관찰했다. 비상시에 분해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오래 관찰하지 않아 나는 알게 됐다. 분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단단한 덤프트럭도 너트나 나사로 조립을 했기 때문이다. 필요하면 언제나 풀 수 있게 되어있었다. 배도 마찬가지다. 적적한 장비를 이용해서 분해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아무리 큰 배라도 사람이 만든 기계일 뿐이다.

여흘, 배를 분해를 해도 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꼭 배 안의 사람들이 모두 잘못되기를 바라기나 하는 것처럼 늑장을 부리더니 결국 살아있는 귀한 생명은 한 사람도 구하지 못했다. 한 명도!

이런 생각이 절실하다. 만약 그 여인이 그 곳에 갔을 때, 유가족과 함께 자리에 앉아서 이렇게 말했다면? “지금 당장 배를 분해를 하든지 안에 있는 사람이 다치지 않을 만큼의 폭발물을 사용해도 좋으니 살아있는 그대로 구해내라, 다 구해낼 때까지 나는 여기서 유가족과 함께 있겠다” 그리고 실제로 구조에 소극적인 사람이 있으면 유가족과 함께 죽일듯이 호통을 쳐서 구조를 하게 했다면….

그랬다면 나는 그녀를 이 세상에서 최고로 멋진 대통령으로, 멋진 여인으로, 가장 믿음직한 살아있는 여신으로 신앙했을 것이다. 스승님도 그런 나를 칭찬하셨을 텐데. 나는 그 여인이 여전히 싫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