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판 불변의 법칙
원판 불변의 법칙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5.01 17: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영/소설가

원판 불변의 법칙을 원망한다. 실은 나는 원판 불변의 전혀 법칙을 모른다. 그것이 인문과학의 법칙인지 자연과학의 법칙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식들은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 엄연한 사실이 너무도 절망스럽다. 그래서 오늘 얘기는 아이들이 잘못한다고 아이들만 나무라서는 안 된다는 걸 이야기 해보는 걸로 하자. 정말이지 지금 당장 우리 부모들이 반성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한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는 이 진리를 우리는 새삼 되새겨야겠다.


내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이제 중학교 일학년이 된 조카딸이 있다. 초등학교 들어가도록 한글을 못 깨우쳐 온 집안이 뒤집어졌었다. 나는 큰엄마로서 조카가 왜 한글을 못 깨우치는지 곰곰 생각하고 조카의 가정환경을 깊이 관찰했다. 조카를 사랑하는 내 마음이 운명을 자극했던지 한글을 깨우치지 못하는 이유가 발견됐다. 한글뿐만 아니라 학습적인 사고가 차단되어 있었다. 범인은 TV였다. 그것의 화면은 빠른 영상의 움직임으로 눈만 자극하는 이상한 귀신이었다. 조카의 엄마가 아이가 태어나자부터 아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TV를 봤던 게 원이이었다. 조카는 모든 사물을 어떤 비판도 없이 오직 머리로 사고하는 과정 없이 눈으로만 보는 것이다. 마치 TV영상을 보듯이 그렇게. 원인을 알고 나니 비교적 쉬웠다. 우선 조카네 TV부터 없앴다. 그리고 무한한 생각의 공간을 체험하고 좋아졌던 것이다.

그 뒤로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고비고비마다 나는 내 자식들과는 또 다른 애틋함으로 조카의 성장을 도왔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조카딸이 봉착한 고통이 내 가슴을 후벼판다. 조카딸은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은따였는데 이번주부터는 왕따로 등극했다. 은따는 은근히 따를 당하는 거고 왕따는 대놓고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다. 은따건 왕따건 마찬가지지만 내 사랑스런 조카가 왕따라니….

사태의 국면을 바꾸자면 이번에도 관찰이 먼저였다. 이번에는 조카가 많이 자랐으니 대화 위주로 풀어갔다. 조카는 서럽게 서럽게 울면서 그 동안에 당했던 얘기를 풀어냈다. 나는 화가 나는 걸 꾹 참고 끝까지 들었다. 못난 것들, 모온난 것들…. 발 중에 가장 무서운 발은 ‘라이발’이라고 했던가. 조카를 왕따시키는 주동자는 조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에도 조카를 일 년간이나 괴롭혔다. 조카아이가 어린이 기자단으로 어린이 신문에 글과 사진이 실리고 글짓기도 잘하고 상도 많이 받고 하니 이 불쌍한 주동자는 시기질투가 났던 것이다. 조카는 학기초에 자기 엄마에게 말했더니 처음엔 조금 개선되는 것 같더니 도로 조카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제 어른들의 눈을 피해 더욱 교묘해지고 교할하게 조카를 괴롭히며 엄마에게 고자질이나 했다며 은근 다시는 고자질을 못하게 협박까지 곁들였다.

조카는 한번 엄마에게 말한 게 죄밑이 되어 이번에는 엄마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서 그 혹독함을 견뎠다. 서러움과 부당함과 분노가 급하게 발달하는 초등학교 5학년이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하면 정말이지 내가라도 달려가서 그 주동자를 모가지를 비틀어도 시원찮았다. 육학년 때는 다행 한 반이 아니다가 웬걸 중학교에 같은 학교에 같은 반에 배치가 돼버린 것이다.

이제 중학교에 와서는 그 주동자도 아직 쫄병들을 채 규합하지 않았던 때는 별 반응이 없더니 웬걸 자기 엄마를 닮아 조직화엔 천부적 소질이 있었던지 또 쫄병들을 모아 조카를 왕따시키기에 이르렀다. “차라리 남자 아이들이 부러워요. 남자 아이들은 금방 욕하고 싸워도 금방 또 욕하고 장난치잖아요. 근데 여자 아이들은 이게 뭐에요. 몇 년씩이나 … 죽일거에요!!” 해놓고는 설움에 겨우 한참을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보복이 두려워 절대로 학교에 연락하지 말란다. 그 주동자의 엄마는 학부모 교육위원이었다, 빌어먹을!!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면… 가슴이 미어진다. 이를 어쩐단 말이냐!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인가. 얼마나 위대한 삶들인가 말이다. 단 한번 주어진 귀하디 귀한 인생들이 아닌가. 정녕 우리는 저 연록색 이파리들을 피워올리는 저 나무들처럼 아름답기만 할수는 없는 것인가. 눈물을 흘리며 조카는 또 말한다. “어제와 그제는 점심밥을 혼자서 먹었어요. 재빨리 달려가서 이학년 언니들 틈에 끼어 급히 먹고 밥을 남기고 일학년은 오기도 전에 식당을 빠져나왔어요. 교실로 돌아왔더니 교실은 텅 비어 있고 운동장을 내려다봤더니 모두 서로 서로 웃고 얘기하는 게 너무 부러운 거에요”하고는 또 눈물을 줄줄 흘린다. 못난 나는 함께 울기밖에 할 일이 없다. 빌어먹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