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체
급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5.07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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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어젯밤 자정이 설핏 지난 시간에 슬그머니 잠이 깨서 눈을 떴다. 휴일이라 와서 옆에 자던 딸이 발치에 앉아 있었다. 왜 안 자냐고 물었더니 배가 아픈데 화장실에 가도 소용이 없고 머리도 띵하다는 것이었다. 하면서 좀 자고 나면 괜찮을 것 같으니까 이제 누워 자겠다며 내 옆에 누웠다. 배를 만져봤더니 따뜻하고 머리도 따뜻하지만 열기는 없고 딸도 괜찮다기에 그냥 도로 잠이 들었다.


잠이 들어 꿈속에서 시퍼런 강물 속 까마득히 먼 곳에서 딸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나는 딸이 더 떠내려가기 전에 잡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딸에게로 달려갔다. 물결의 방향과 같은 쪽으로 움직여 가서 다행 금방 딸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웬걸, 물을 거슬러서 빠져 나오기는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딸이 스스로 자맥질을 퐁퐁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 그렇게 하며 올라가자”라고 말하며 물이 얕은 강가로 나왔고 딸은 육지로 향해 달려가고 나는 잠에서 깼다. 꿈을 깨면서 뭔가 나를 일깨우는 게 있었다. 딸에게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자각이었다.

서둘러 딸의 머리를 만져보았다. 여전히 열기라고 할 수 없는 온기가 정상인 것 같았다. 이번엔 배를 만졌더니 딸이 또 괜찮다며 내 손을 밀어냈다.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다시 이마를 만져보았다. 처음보다 차가워지고 있었다. 체온은 만질수록 따뜻해져야 되는데 차가워지고 있었다. 순간 ‘급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딸에게 어떻게 아픈지 자세히 말하라고 했다. 딸은 토하고 싶은데 토가 나오지도 않고 답답하고 입을 벌리고 있어야 숨을 쉴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딸을 일으켜서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손을 씻기고 손가락을 목구멍에 집어넣어 억지로라도 토하라고 했다. 딸은 두 번을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었는데도 토가 나오지 않았다. 내가 등을 두드렸더니 드디어 딸은 토했다. 딸의 입에서 나온 것을 보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전혀 소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음식이 그대로 화장실 바닥에 쌓여 있었다. 저녁으로 먹었던 당면과 소고기와 떡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그대로 나왔다.

자기 전에 인터넷 강의를 하느라 저녁을 늦게 먹었다. 쇠불고기에 국물을 자작하게 부어 끓이며 미리 삶아놓은 떡과 당면을 넣어 먹는 걸 딸이 좋아해서 함께 해서 먹었다. 딸은 배가 고팠다며 특히 당면을 욕심 부리며 먹었었다. 김치라도 먹어가며 먹으라는 내 말은 들은 척도 안하고 당면을 자기 앞접시에다 갖다놓기 바빴다. 거기다 나는 떡도 먹이고 싶은 욕심에 “얘, 떡도 부드러워, 어쩌고…” 하며 권했다. 어릴 때부터 식사 후에 꼭꼭 먹이는 과일도 챙기지 못했다. 그러니 위 속에는 면류만 잔뜩 들어간 셈이다.

저녁 식사가 9시께이었고 딸이 소화액도 전혀 섞이지 않은 음식을 뱉어낸 시간이 새벽 4시였다. 장장 일곱 시간을 딸의 명치에 음식이 막혀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그렇게 토하지 않았으면 이제 토할 기운이 없어서 체내에 산소공급이 서서히 끊기며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딸의 등을 뚜드리며 물을 마시게 하며 이제 이런저런 생각이 마구 뒤섞이며 아찔했다. 위에 남아있는 음식을 마저 토하게 물을 조금씩 마시도록 했다.

입술까지 하얗다가 토하고 난 딸은 이제 눈가에 붉은기가 돌며 얼굴 전체에도 피색이 돌았다. 숨을 고르곤 딸이 “엄마 살려줘서 고마워요”했다. 그리고 내가 꿈속에서 딸을 깊은 물에서 건져 올리던 쯤에 딸은 자신이 얼마나 심각했는가 하는 얘기를 소곤소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고 흰옷을 입은 어떤 할아버지가 이상한 춤을 추는 게 눈에 보이며 분명 몸은 방에 누워있는데 한편으론 자신이 어떤 낯설고 먼 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고 한다. 맙소사, 딸은 저 세상으로 가는 길목까지 갔던 것이다.

나는 딸의 말에 대꾸는커녕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고 조상이 도왔다는 말밖에 생각나는 게 없었다. 딸의 볼을 하염없이 쓰다듬으며 나는 감사하고 행복했다. 내가 도울 수 있을 때 급체가 걸려서 다행이라고. 혼자 있을 때 그랬다면? 그런 고마운 꿈을 꾸지 않았다면? 내처 잠만 퍼잤다면? 급체라는 진단을 재빨리 하지 못했더라면? 억지로라도 토하게 하지 못했다면??

그리고 한 없이 한 없이 미안했다. 누구에겐가 너무 죄송했다. 그래도 그래도 힘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그리고 우리 모두 각자 각자는 매순간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고. 남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때 내 생명이 진정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것은 진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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