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와 등대
세월호 참사와 등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5.0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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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술/경남과기대 전자상거래무역학과 교수
 

사람을 살아가게 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단순히 살아가게 해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사람이 살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가 더 적절한 물음인 것 같다. 이에 답하기에 앞서 반대의 것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을 멈추게 하는 것, 즉 사람이 자살을 하는 이유는 내일이 오늘보다 눈곱만큼이라도 나을 것이란 기대가 없어서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오늘’은 평범한 ‘오늘’이 아닌 혼신의 힘을 다해 겨우 버텨낸 하루라는 전제가 숨어있다. 혼신의 힘을 다 짜내어 ‘오늘’을 버텼기에 더 이상 ‘오늘’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나아지지 않을 ‘내일’을 버텨낼 힘도, 의지도, 희망도 없는 상태에서 다른 세계로의 비행(飛行)을 선택하는 것이다. 비행, 즉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은 소망은 현재에 대한 불만에서 출발한다.


만약 현재가 만족스러운 상황이라면 그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현재에 대한 불만으로 인한 비행에는 사소하게는 지루하고도 평범한 일상의 반복으로 인해 잠시 다른 곳으로 갔다 오고자 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깊게는 아무리 노력해도 더 이상 나아지지 못함에서 나오는 그래서 완전히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전자는 짧은 비행으로 해소되어 다시 일상생활을 살 수 있게 해주지만 후자는 근본적인 떠남을 필요로 하기에 그 비행이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다. 또한 전자의 경우에 비행의 목적지는 휴양 혹은 학습이라는 삶의 부차적인 부분들과 관련이 되는 반면에 후자의 경우에 비행의 목적지는 살기 위해서라는 삶의 근원적인 부분과 관련이 되며 이 경우에는 목적지가 실제보다 이상화되기 쉽다. 그러나 이상화되어 있다라는 것은 언젠간 이곳보다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겠지라는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살아가는 것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실행하지 못하게 막는 것으로 두려움을 들 수도 있겠지만 희망, 언젠간 나아지겠지라는 희망이 있어서이다. 만약 비극적인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언젠가는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화된 공간마저 없다면 과연 그들은 어떻게 또 하루를 버텨야 할까?

사람이 살아가는 것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것은 희망이라는 등대가 있어서이다. 사람마다 항해하는 바다의 상황과 배의 상태는 다 달라서 어떤 이들은 크루즈호를 타고 잔잔한 대양을 유유히 다니고 어떤 이들은 나룻배를 타고 요동치는 파도에서 돛대를 붙잡고 겨우 떠다니기도 한다. 칠흑처럼 어두운 상황에서 더 이상 항해하는 것을 계속하고 싶지 않다가도 저 멀리 보이는 등대는, 저기까지만 가면 괜찮다라는 희망을 주어 계속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또 이 등대가 가지는 특성은 자신의 등대가 남의 등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희망찬 사람이 내미는 손길 속에서 잠시나마 살아가는 것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던 이들은 그 손을 잡으며 다시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게 하는 것은 더 밝은 내일에 대한 희망과 그리고 곁에서 서로 이끌어주고 당겨주는 이웃들이 있어서이다. 총체적으로 참담한 대한민국 자화상을 보여준 이번 세월호 사태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을 당한 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더더욱 가슴이 쓰라리다. 대한민국과 국민들은 이들의 삶의 의욕을 지탱해 주는 등대가 되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총체적 부실에 대한 근원적인 반성과 변혁이 없으면 잠시 동안의 등대 역할에 그칠 뿐인데 왜 이러한 비극이 또 반복될 수도 있다는 염려가 더 앞서는지 그저 착잡하기만 하다.

그 동안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권력’들에 의해 야기된 위험한 대한민국의 근본 시스템을 개조하려고 하지 않고 관련 책임자들만 서둘러 문책하고 처벌하는데 그치는 것을 너무 자주 봐 와서 그런 걸까. 똑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근본 시스템을 개조할 필요가 있다. 이런 작업이야말로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와 가족들을 위한 진정한 등대가 되어 주는 일이 아닐까. 국가와 사회 곳곳의 책임 있는 ‘권력’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도 성장제일주의 내지 성과주의에 찌들어 생명과 안정을 뒷전에 두고 있지나 않은지, 자신의 지위에 따른 책임의식을 상실하고 있지나 않은지 냉철히 되돌아보고 지금부터라도 책임 있는 자세로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을 개조하는데 필요한 실질적이고 영구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부디 우리 스스로 이 나라가 부끄러워 떠나고 싶다는 이 생각을 실천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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