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같은 관리(官吏)가 그리워지는 세상
선비같은 관리(官吏)가 그리워지는 세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5.26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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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국어사전에 보면 선비는‘옛날에 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 관리는 ‘국가 공무원·벼슬아치·관원(官員)’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선비는 재물을 탐하는 태도를 버리고 즐기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며, 이익을 위하여 의로움을 손상시키지 않고, 여럿이서 위협하고 무기로써 협박을 하여 죽음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의 지조를 바꾸지 않는다. 사나운 새나 맹수가 덤벼들면 용기를 생각지 않고 그에 대처하며 무거운 솥(鼎)을 끌 일이 생기면 자기 힘을 헤아리지 않고 그 일에 착수한다. 과거에 대하여 후회하지 아니하고 장래에 대하여 미리 점치지 아니하며, 그릇된 말을 두 번 거듭하지 않고 뜬소문을 두고 따지지 않는다. 그의 위엄은 끊이는 일이 없으며, 그의 계책을 미리 익히는 법이 없다. 그들의 행위가 뛰어남이 이와 같다. 선비는 친근히 할 수는 있어도 위협을 할 수는 없고, 가까이하게 할 수는 있어도 협박할 수는 없으며, 죽일 수는 있어도 욕보일 수는 없다. 그들은 사는데 있어 음락(淫樂)을 추구하지 않으며, 음식에 있어 맛을 탐하지 않는다. 그들의 과실(過失)은 은밀히 가려줄 수는 있어도 면대(面對)하여 꾸짖을 수는 없다. 선비는 충성과 신의로써 갑옷과 투구를 삼고, 예의와 정의로써 방패를 삼으며, 인(仁)을 추대하여 행동하고 정의를 안고 처신한다. 비록 폭정(暴政)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입장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다. 그들이 스스로 처신함이 이와 같다.

선비는 좁은 집 허술한 방, 사립문에 거적문이 달린 집에 살며, 옷을 갈아입어야 나갈 수 있고 이틀에 한 끼밖에 먹지 못할 형편이라 하더라도, 임금이 응낙한데 대하여는 감히 의심치 아니하며, 임금이 응낙치 않는다 하더라도 감히 아첨하지 않는다. 그들의 태도는 이와 같다. 선비는 지금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옛 사람들과 뜻을 두며, 지금 세상에서 행동하고 있지만 후세의 모범이 된다. 마침 좋은 세상을 만나지 못하여, 임금이 끌어주지 아니하고 신하들은 밀어주지 아니하며, 아첨을 일삼는 백성들 중에 붕당(朋黨)을 이루어 가지고 그를 위협하는 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의 몸을 위태롭게 할 수는 있으나 그의 뜻을 뺏을 수는 없다. 비록 위태롭다 하더라도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는 끝내 자기 뜻을 믿으며, 백성들의 고통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들의 걱정은 이와 같은 것이다.

선비는 빈천하다고 해서 구차하게 굴지 아니하며, 부귀를 누린다고 해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다. 임금의 권세에 눌려 욕을 보지 않으며, 높은 자리의 사람들 위세에 눌려 끌려 다니지 않고, 관권(官權)에 눌리어 그릇된 짓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을 선비라 부른다. 라고 예기(禮記) 유행(儒行)편에 나오는 말이다.

또한 채근담에 보면 권세에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은 깨끗하다. 권세에 가까이 할지라도 물들지 않는 사람은 더욱 깨끗하다. 권모(權謀)와 술수(術數)을 모르는 사람을 높다 하나 알아도 이를 쓰지 않는 사람을 더 높다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권력투쟁에서 승리를 쟁취한 순간부터 권력의 비극은 시작되는 것이다. 미이라 잡이가 미이라가 되듯 수구세력들을 몰아낸 개혁세력은 오래지 않아 스스로 수구세력으로 전락함으로써 가라앉게 된다. 정치에 있어 최고의 선(善)은 곧 자기 자신의 개혁이며, 그 어떤 권력에도 물들지 않을 수 있는 도덕의 완성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이 지상에서의 권력은 그 어떤 권력이라고 할지라도 진수(進水)를 시작할 때부터 이미 물이 새어 가라앉는 난파선에 불과한 것이다. 이조 중종 때 최수성이 조광조와 함께 개혁정치를 추구하다 수구세력들로부터 모함을 당하여 붕당죄(朋黨罪)의 반역 죄인으로 숙청되면서 한탄한 말이다.

21세기 첨단의 시대인 이 시대 이 땅에 돈과 권력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 주변에서 터져 나온다는게 지조를 지키고 바른말을 하다가 고초를 겪었다는 소식은 없고 불륜이니 탈세니 뇌물이니 직유기니 혼외자식이니 아니니 한탄스러운 소식들로 창공에 가득 찾으니 가슴이 답답하고 답답하도다. 어디 시원한 소식한 번 들어 받으면 한다. 세월호 참사로 대대적인 개각이 예고되고 있는데 선비다운 관리들이 많이 등용되어 이 나라를 바르게 인도 했으면 한다. 우리는 너무 앞만 보며 달려왔다. 우리는 너무 말이 많았다.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밖으로만 향하던 마음을 거두어 침묵 속에서 황폐해진 내면을 돌아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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