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풍경
학교의 풍경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6.0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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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다른 철학자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나는 상대적으로 TV를 좀 즐겨 보는 편이다. 철학자와 TV는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라고 보통 생각하지만, 저 유명한 비트겐슈타인도 혼신의 힘을 다해 강의를 한 다음에는 곧잘 영화관에 가서, 그것도 맨 앞자리에 앉아 서부활극을 즐겨 보았다니 TV나 영화를 즐긴다는 것이 철학자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S사의 B라는 오락프로를 특별히 챙겨보는 편인데 유명인들의 어린 자녀들이 부모와 함께 나와 지식과 재치를 겨루는 이 시간이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중 몇몇 아이들이 새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고 해서 학교생활의 이런저런 일들이 화제가 되기도 한다. 그런 대화를 유쾌하게 들으며 아득한 그 옛날 엄마의 손을 잡고 처음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때가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아련하게 떠오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학교에 들어간다고 하는 이 일이 실은 예삿일이 아니다. 물론 서당이나 향교와 달리 지금은 누구나가 학교를 다니는 보편교육시대니 학교를 다닌다는 게 현실적으로는 예삿일 중의 예삿일이 되어 있지만, 대부분이 대학까지 학교를 다니는 우리 한국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특히 그 세월과 비용, 노력, 영향 같은 것을 생각해보면, 이게 그냥 예삿일만은 아닌 것이다. 재미 삼아 말해본다면 예사롭지 않은 예삿일이라고나 할까.

초등학교 입학에서 대학교 졸업까지 대략 16년의 세월을 우리는 학교에서 지낸다. 유치원까지 포함하면 이래저래 거의 20년이다. 인생을 대략 80년이라 친다면 일생의 거의 4분의 1이 학교생활인 셈이다. 그렇게 보면 학교라고 하는 이 장소가 엄청나게 중요한 곳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인생살이의 결정적인 조건들이 이 학교에서 만들어진다. 지식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 심지어 학벌까지.

그런데 요즘 우리는 이게 너무 흔해빠져서 그런지 학교라는 게 도대체 무얼 하는 곳인지 그 본질을 망각해버린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학생들 입장에서 보면 시험을 치고 점수를 받아 다음 학교로 가기 위한 지겨운 곳,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살벌한 곳, 그래서 온갖 고충을 감내해야 하는 곳, 그런 곳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학교는 결국 돈과 지위로 이어진 통로일 뿐인 것이다.

그런데 애당초 학교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그런 것보다는 훨씬 더 숭고한 어떤 곳이었다. 2500년 전 플라톤에 의해 아테네에 세워진 학교 아카데메이아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세워진 뤼케이온에서는 진리 그 자체가, 학문 그 자체가 진지하게 그리고 숨 가쁘게 탐구되었고, 제논과 에피쿠로스의 학교에서는 마음의 평정을 위한 수양도 행하여졌다. 어떻게 보면 소크라테스가 젊은 청년들과 열띤 대화를 나누었던 시장이나 광장이나 가게 같은 곳들도 사실상 학교였는데, 거기서는 ‘영혼의 향상’이라는 것이 거의 목표였다. 거기서는 진정한 진리나 선, 아름다움, 정의, 덕, 우정, 경건, … 그런 가치들이 펄떡거리는 생선들처럼 살아서 전수되었다. 중세 1000년간, 교회에 부속된 학교들에서는 신에 대한 신앙이 진지하게 논의되기도 했다. 그런 세월들을 거치면서 학교란 제대로 된 사람,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라는 본질이 마련된 것이다. 그래서 거기서는 지성과 덕성과 감성이라는 가치가 종합적으로 도야되었다. 선생님들은 그런 것을 가르치려 했고 학생들은 그런 것을 배우려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의 학교는 어떠한가. 교사와 교수에게 지금 제대로 된 ‘교’(가르침)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가. 학생들에게 지금 제대로 된 ‘학’(배움)이라는 게 있기나 한가. 공자는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했는데 우리들의 학교에 그런 배움의 즐거움이 있기나 한가. 적지 않은 교육자들이 자괴감에 빠져 가르침이라는 것을 포기한 지 오래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움이라는 것을 아예 기대하지 않고 밤늦은 학원공부에 지친 그들의 태반이 수업시간에 그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더러는 학교폭력과 왕따의 공포에 떨고, 더러는 점수와 석차를 위한 피말리는 경쟁을 잠시 떠나 학교 밖으로 나갔다가 무너진 건물에 깔려 죽기도 하고 더러는 배타고 제주도로 가다가 배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기도 한다.

도대체 학교란 무엇하는 곳인가. 우리는 거기서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거기서 도대체 ‘어떤 인간’, ‘어떤 인재’가 길러져야 하는가. 교육감이라는 사람을 선거한다고 하는데, 이런 본질을 아프게 고민하는 후보가 도대체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인재밖에는 도무지 기댈 것이 없는 우리나라이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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