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꿈
낮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6.1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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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떠나야할 그가 정수리에 몇 가닥 남은 백발을 올올이 세우며 돌아왔다. 이마와 정수리가 그야말로 반들반들 광채가 났다. 너무 웃어서 더 그렇게 보였다. 그의 웃음이 너무 가당찮았다. 어떻게 그렇게 가당찮게 웃을 수 있을까. 윗옷을 벗어 팔에 걸치고 보무도 당당하게 웃는 입속으로 이빨이 몇 개 썩어가는 게 보였다. 총리 지명을 받으면 그렇게 웃음이 나오는 걸까?


빛나는 정수리에 몇 가닥, 정확히 4가닥의 머리카락이 구불거리는 걸 보며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가 된 불행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던 사람답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면 그의 과장된 걸음걸이 때문이었을까. 그가 온 나라를 ‘망언의 도가니’로 만들어 온 국민이 서로 옳고 그름의 분별을 잊고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괴로워하고 나라가 망하는 걸 보며 ‘저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악몽에 시달린다. 하나님의 뜻에 미친 그가 총리가 되어 나라를 통째로 힘센 외국에 팔아먹으며 ‘이는 하나님의 뜻이니 맛있게 영원히 잡수시와요’하며 윗옷을 팔뚝에 걸치고 거침없이 웃는 악몽!!! 안 된다. 절대로 그가 총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비명 같은 잠꼬대를 하며 그 소리에 스스로 잠이 깬다. 그래서는 안 된다, 라는 말을 다시 잠이 들 때까지 중얼거린다.

다시 든 잠에서 다시 악몽을 꾼다. 뻔뻔한 그의 빛나는 이마가 어느새 세월호에서 한 사람도 구조하지 못한 무능함을 과거의 잘못(적폐)으로 돌리며 직접관련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 유씨라는 늙은이를 쫓는 시늉을 하는 그녀로 변한다. 그녀는 무슨 이유에선지 자꾸 자꾸 ‘거짓말이 아니다, 나는 거짓말은 안 한다!!’고 외친다. 그녀를 본 나는 이때를 놓칠 새라 그녀에게로 달려간다. 그러나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녀는 멀어지면서 웃는다. 그 웃음이 ‘너무 우아해서’ 나는 오히려 증오스런 마음이 된다. 그녀를 따라가며 살려내라, 살려내라, 고 외친다. 그녀는 너무 우아하게 웃으며 멀어진다. 그녀는 겉으로는 웃을 줄밖에 모르는 백치 같다. 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아무도!! 그녀가 갑자기 획 돌아보며 소리친다. 그리고 아무도 겁나지 않아, 내겐 니들이 맹종하는 돈과 권력이 있거든.

이제 막 가라앉고 있는 배에 갇힌 국민 한 사람도 지키지도 구조하지도 못한 그녀 한 사람을 ‘자알 지키겠다’고 해서 도지사가 된 젊은 남자가 커다란 소리로 킬킬거린다. 웃음소리가 너무 방정스럽다. 진지함이라곤 겨자 씨 만큼도 없는 웃음소리가 소름이 돋는다. 웃음소리에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든다. 내 주위에 모여든다. 하나 같이 소박하고 소탈한 사람들이다. 서로 소리 없는 웃음으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큰 소리를 내며 웃는 그를 바라본다. 점점 사람들의 표정이 굳는다. 사람들이 천천히 방정스럽게 웃는 그 남자에게로 다가간다. 비로소 웃음을 멈춘 남자가 도망간다.

“조선을 벌한 것은 신의 뜻이었다” 방정스럽게 웃던 남자가 사라진 쪽에서 빛나는 정수리에 몇 가닥 흰 머리카락이 구불거리던 남자가 달려온다. 한 사람이 아니다. 똑 같은 모양을 한 사람이 열 명은 넘는다. 다행히 바다가 소탈하고 소박한 우리와 달려오는 열 명의 남자 사이에 가로 놓여 있다. 열 명의 남자는 우리는 잘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어로 말한다.

열 명의 남자들은 한 번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또 한 번은 “조선을 벌한 것은 신의 뜻이었다”를 번갈아 외쳤다. 똑같이 짙은 회색 윗옷은 벗어 팔뚝에 걸쳤다. 웃으면 썩은 이빨이 보일락말락 하는 것도 너무도 똑 같다. 내가 열 명의 남자들이 보기 싫다고 생각하자 내 주변에 있던 소탈 소박한 사람들이 어디론가 달려갔다. 너무 달려서 숨이 차다. 나는 소리친다.

“안 돼! 안 된다고!! 그러나 이렇게 외치고 싶은 건 내 마음 뿐이고 입술이 말을 만들지 못한다. 어버버….” 벌떡 몸을 일으켰다. 꿈이었다. 나는 앉은 채 생각에 잠긴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모르게 되면 우선은 편할 것 같지만 실은 고통이구나. 가장 올바르게 행동해야할 소위 사회 지도급 사람들이 옳지 못하면 국민들은 참으로 가엾겠다. 참으로, 살맛 안 나겠다.

진실이 묻히고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에선 아무것도 잘 될 리 없다. 국민이 괴롭다. 우리는 고통스럽다. 날씨도 점점 더워진다. 너무 국민의 뜻 몰라주면 안 된다. 국민은 진실을 목말라한다. 사람은 밥만으로 살 수 없듯이 거짓으로만 살 수 없다. 거짓으로만 살아 라고 하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을 산 채로 죽어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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