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위, 그 깊은 인연
내 사위, 그 깊은 인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6.1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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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이제 갓 취업 전선에 뛰어든 딸이 직장 내 왕따를 당했다. 사무실 직원이라고 해야 지위고하 남녀노소 다 합해서 열 명이 될락말락하는 데서 당하는 일이라 진짜 곤란하다. 딸의 얘기를 들어보면 지옥이 따로 없다. 사람이란 호의와 사랑도 그렇지만 말도 주고받고 살아야 한다. 하루 종일 누구도 말을 걸어주지 않고 어쩌다 큰 맘 먹고 말을 먼저 걸면 “응으…” 어쩌고 하며 얼버무리며 피한다.


가장 견디기 힘든 상황은 식사였다. 밥을 함께 먹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배는 고프고, 그렇다고 혼자 꾸역꾸역 먹자니 더 고역이고. 엄마인 나 역시 밥이 문제였다. 딸이 굶으며 왕따를 당한다고 생각하니 회사인지 지옥인지 가서 한바탕 뒤집어놓고 싶었다. 학교만 같아도 선생님께 어떻게 부탁해보겠는데 속을 끓이는 방법 외에 다른 수가 없었다.

딸이 처음 당하기 시작한 건 ‘호의’가 화근이었다. 처음 입사를 해서 딸은 청운의 꿈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사한테 귀염 받고 일 잘하는 직원이고 싶어서 사무실 직원 모두에게 상냥하게 대했다. 상냥한 게 문제가 되리라고는 꿈엔들 생각했겠는가? 딸보다 몇 달 먼저 입사한 남자직원이 있었고 상냥한 딸에게 어느 정도 반한 것까지는 좋았다. 딸도 회사에서 돌아오면 그 남자직원이 은근 맘에 든다고 들떠서 얘기하곤 했다. 웬걸, 그 남자 직원을 은근 점찍어 두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노처녀 ‘대리님’이셨으니!! 그 대리님의 전방위적 복수극은 어쩌면 당연했던 것이었던 것이다.

왕따의 생활이란 그 독이 너무도 지독해서 한두 달도 견디지 못하고 대인공포증이나 우울증에 걸리고 만다. 딸은 손목을 두 번이나 긋고 신경과 상담을 받고 나도 지치고 딸도 지쳐갈 무렵이었다. 딸의 오빠가, 그러니까 내 아들이 친구를 동생에게, 그러니까 내 딸에게 소개해 주었다. 처음엔 한 가지 기대밖에 없었다. 제발 수다라고 실컷 떨 수 있는 상대가 되어주었으면 했다. 다른 기대를 하자니 할 것도 없었다. 편의점 알바를 한다는 그 친구에게 무슨 기대를 한다는 게 오히려 본인에게 부담이 될 터였다. 게다가 고백도 하지도 않고 걍 귀여운 동생 정도로 대해준다고 딸아이는 조심스럽게 나를 쳐다봤다. 그래도 나는 어른이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딸을 달랬다. 그런 애매한 관계로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알바총각은 드디어 고백을 했다. 딸을 여자로 생각할 수밖에 없노라고!!

딸은 이제 왕따 따위는 개나 먹으라며 ‘홀로서기’를 씩씩하게 실천해 나갔다. 밥은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음식을 싸가서 바쁜 척 일을 하며 먹었다. 그리고 독서로 시간을 때웠다. 드디어, 카톡으로 급한 고백을 받고 ‘첫데이트’를 잡았다. 일주일을 기다리는 동안 딸은 너무도 행복해 했다. 그러고 봤더니 딸은 학교생활에 쫓겨 데이트도 못해봤던 것이다.

데이트에서 돌아온 딸은 룰루랄라 춤을 추며 대문을 들어왔다. 참을 수 없는 수다욕구에 데이트 중에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다 얘기했다. 함께 식사를 하고 노래방을 가고 거리에서 ‘진상커플’이 되고. 진상커플이 뭐냐면 사람들이 많이 왔다갔다 하는 대로에서 뽀뽀를 하는 것이란다. 그러니까 딸은 그 짓을 했다는 것이고. 노래방에서 육성으로 결정적 고백을 받았다. “처음 한 오 분간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아무 말도 못했다구” 딸은 그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식사를 할 때에는 딸이 자장면을 먹지 않고 스파게티를 먹어서 고맙다고 말했단다. 글쎄, 뭐 자장이 입가에 묻는 것보단 스파게티 소스가 입가에 묻는 게 조금 더 보기 좋을래나? 어쨌든 딸은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하긴 사람에 취한 건 맞지.

놀라운 일은 회사 사무실에서 예비 되고 있었다. 사람에 취하고 사랑에 취한 딸이 직원들 보기에 기분이 좋았던 모양. 언제 그랬냐 싶도록 딸을 끼워주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자해지? 그 노처녀 대리가 먼저 딸에게 “왜 점심을 그 따위로 먹냐”며 건강 상한다며 거의 강제로 딸을 끌고 가서 제대로 밥을 먹게 도와주었다. 참 인생하고는….

노래에도 ‘사랑을 하며는 예뻐져요, 사랑을 하며는 꽃이 펴요!’ 하는 가사가 있다. 모쪼록 사랑을 하고 볼 일이다. 그럼 나도? 거울을 보니 머리가 허옇다. 실은 이 글은 이제 나의 사위가 될 그 ‘알바생’의 얘기로 채우려 했는데 딸의 얘기로 너무 장황했다. 사위의 얘기는 다음 기회에 이어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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