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 그 깊은 인연
사위, 그 깊은 인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6.2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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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저번 글에서 나의 사위후보, 편의점 알바생에 대한 얘기를 하려다 직장 내 왕따 당한 딸 이야기만 장황하게 했다. 그러면서 이번엔 사위후보 이야기로만 이어가기로 했다. 모쪼록 이 글에선 알바생의 이야기가 제대로 풀어졌으면 한다. 팔은 안으로 굽고 한 다리가 천리라고 자꾸 딸 쪽으로 기어가는 이야기머리를 다잡아 본다. 게다가 나는 감정적인 성질이라 잘 될지는 모르겠다.


각설하고 사위감의 인상착의부터 말하자면 머리카락 끝부분 3cm 정도는 연한 하늘색이고 위쪽으로는 노랑색 머리카락을 한 키 1m80cm의 건장한 20대 중반의 남자다. 머리카락 염색을 하는 데 거금 25만원을 투자했다. 그러니 염색하다 돈을 다 쓰는 건 아닌가 하고 걱정이다. 하체가 긴 체형으로 마른 편이다. 커다란 검은 뿔태안경을 썼다. 코가 우뚝하고 눈은 떼꾼하다. 멋있다!

그렇다고 이런 저런 외모가 멋있다는 얘기를 하자는 건 절대로 아니다.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쌩 거짓말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외모가 안 중요할 수가 있겠는가? 솔직하게 말해서 그것도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진정 정직하게 말하자면 그의 독창성과 용기에 나는 반했고 그걸 얘기하고 싶다. 내가 내 사위감을 깊은 인연으로 받아들인 것이 바로 그점이었으니까.

독창성, 이 말은 언제 들어도 살 떨린다. 살 떨리지만 실현해내기는 너무도 어려운 말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는 해내버렸다. “나는 너를 평생 편하게 벌어먹여 살리겠다” 그는 나의 딸에게 첫 테이트에서 말했다. 혹자는 그게 어떻게 독창성인가 당연한 거지, 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런데 잠깐만 생각해보자. 우리는 사랑을 고백하면서 동시에 생활에 대한 확신과 확답을 상대에게 보장해 주는가? 내가 못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나는 여태 60년 가까이 살고 있지만 그런 말 해주는 늠은 한 늠도 없었다. 결혼 전 연애도 안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이 늠(?)이 그 면에서 그중 제일 가는 늠이다. 결혼하고 한 달도 안 되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소설 나부랑이 잡고 있지 말고 함께 벌어먹고 살자고 투덜거렸으니…. 그렇다고 쌩 공짜로 먹은 것도 아니었는데. 근데 내 사위감은 내 딸에게 첫 데이트에서 그 말을 딱 안겼다. 대단한 늠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나도 당연한 말이 독창성이 된 막장 드라마의 무대가 되어버린 우리의 삶이 너어무 싫다.

용기, 이 얼마나 고귀한 말이며 주눅 주는 말인가. 내 사위감은 고귀함을 실현하며 많은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해버렸다. 중학교를 성적 전교 5위 내를 석권하며 졸업하고 우수한 성적 그대로 고등학교를 진학했다.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말을 했고 이에 사위감이 반론을 제기했다. 선생님이 선생님답게 그냥 선선히 사과를 했으면 다행이었겠는데 내 사위감의 용기와 정의감을 몰라보고 그냥 화를 내며 윽박질렀다. 내 사위감은 계속 사과를 요구했고 담임은 계속 은근 협박하며 윽박질렀다. 이에 사위감은 그런 환경에서 공부를 한다는 건 시간낭비라며 자퇴를 해버렸다.

자퇴를 하기 전 집안에다 먼저 통보를 했다. 당연히 부모님들이 기함을 하며 반대했고 집을 나가라고 했다. 이에 사위감은 친구집에서 며칠을 외박을 하며 부모님을 압박했다. 어머님이 먼저 슬그머니 백기를 들었다. “자퇴를 해보까 … 대학은 니는 공부를 잘 하니 검정고시를 치면 되겄지 머….

드디어 사위감은 자퇴를 했고 ‘출가’를 그것도 서울로 감행함으로써 스스로 자신 속의 부처성도 용현해냈다. 말년에 부처님이 우리 모두의 가슴 가슴마다 부처가 내재해 있으니 그 불성을 용현하면 참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씀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부처가 출가를 감행하고도 고난도의 수행을 하고서야 중생이 행복해질 수 있는 정답지를 이루어냈듯이 내 사위감도 이제 고난의 시작이었다.

그나마 보호막일 수도 있던 소속된 학교도 가정도 스스로 버렸으니 어쩔 것인가. 자신의 인생은 온전히 자신만이 개척해내야 했다. 우선 당장 생계가 문제였다. 겨우 구한 일자리가 고깃집 불화로에 불지피는 일과 편의점 알바였다. 처음엔 하나만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불지피는 일과 편의점 일 두 가지 다 했다. 밤낮주야로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절대고독의 시작이었다.

내가 통곡하며 내 사위감을 칭송하는 까닭이 바로 저 절대고독에 있다.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는 서울 살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말이다. 그 절대고독을 바락바락 일을 하는 것으로 이겨냈다. 이제 어느 정도 서울 살이에 익숙해졌지만 경제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때에 내 딸과 인연이 됐다. 갈 길이 멀지만 걱정마라, 사위야!! 사랑한다. 힘내자, 나는 절대 니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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