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한 그들
오묘한 그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7.01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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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한동안 외국 생활을 하느라 약간의 고독을 감수해야만 했다. 물론 현지의 이런저런 사람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느라 오히려 좀 바쁠 지경이었지만, 친구나 동료 등 평소에 교류가 많던 사람들과의 접촉이 아무래도 뜸했었다는 말이다. 귀국해서 정신없이 한 학기가 지난 후 종강기념 겸해서 몇몇 동료들과 저녁모임을 가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세월호 이야기부터 선거 이야기, 월드컵 이야기, 연금 이야기, 기타 등등 화젯거리야 여느 사람들의 여느 모임과 그다지 다를 바도 없다. 그런데 대학 선생들의 모임은 한 가지 특별한 장점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그것은 각자의 전공이 다른 데다 일단 그쪽 분야의 최고 권위자들이라 아무데서나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그야말로 아무데서나 바로 옆에서 쉽게 들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자연이라는 게 참 얼마나 신비로운가’ 하는 게 화제가 됐다. 그거야 우리 같은 철학자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자연의 경이로움’이라는 게 사실 2600년 전 저 그리스에서 철학이라는 것이 처음 시작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이것저것 본의 아닌 철학사 강의를 밥상머리에서 늘어놓았다. 좀 주책없었나? 그래도 다들 재미있는 듯이 들어주었다. 그런데 마침 화학을 전공하는 S교수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식물과 동물들이라는 것도 참 묘해서 그들 나름의 사고와 언어 그리고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이 그것을 그들 식으로 이해하지 못할 뿐이지 ‘그런 건 없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일례로 담배라는 식물을 보면 그 새잎이 날 때 그 독한 성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애벌레가 있어 맛있게 그것을 갉아먹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 이 담배는 ‘아 이거 큰일났군’ 하고 생각하면서 대책을 강구한다는 것이다. 참 신기하게도 담배는 갉아먹히고 있는 그 잎 주변에 ㅇㅇ라고 하는 화학물질을 분비해서 애벌레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애벌레인들 순순히 물러설 수는 없다. 먹지 못하면 자기가 죽게 되니까. 그래서 이 녀석은 또 자기 나름대로 담배 잎의 그 화학물질을 무력화시키는 또 다른 화학물질 ㅇㅇ을 자신의 입 주변부에 분비하게 된단다. 그 공방이 예사롭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애벌레가 분비한 그 화학물질은 담배 잎의 화학물질에는 대응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바로 그 화학물질을 선호해 마지않는 애벌레의 천적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 그것에게 잡아먹히게 되고 담배 잎은 그 제3자를 통해 최종 방어에 성공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인문학자라 자연과학자의 이런 이야기가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거의 파브르의 곤충기를 읽던 어린 시절처럼 나는 그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그 제3자가 새인지 다른 곤충인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하여간 대단하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거야 그냥 본능적 반응인 거지 그게 무슨 사고와 언어며 행동이냐고 반박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닌들 또 어떠리. 자연의 세계는 어느 것 하나 시시하게 볼 수 없는 오묘한 그들 각자의 질서를 지니고 그 질서체계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틀림없지 않은가. 엄청나게 치밀한 법칙들이 아프리오리하게 그 모든 것들에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다. 거미나 나비, 장미나 바나나 같은 것들도 실은 인간이 갖지 못한 엄청난 능력을 하나씩은 다 갖고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하찮게 여기지만 실은 우리는 절대로 거미처럼 실을 뽑아 집을 짓지 못하고 나비처럼 살랑살랑 날아다닐 수도 없으며 장미처럼 아름다운 향기를 뿜지도 못하고 바나나처럼 맛있는 열매를 맺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자연 속의 그 어느 것 하나 시시한 것이 있을 수 없다. 그것들을 미물이라 여기는 것은 오로지 인간들의 무지에 근거한 오만은 아닐는지.

그 오만이 이젠 하늘을 찌를 듯하여 온 지구를, 아니 우주까지도 휘하에 두고 닥치는 대로 갑질을 하려고 한다. 자연은 인간에 대해 절대로 을이 아니다. 그래서 이제 그들도 그들 나름의 사고를 하고 그들끼리 서로 연대하여 인간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기후변화가 심상치 않다. 인간들은 또 나름대로 그것에 대한 대응을 하려들겠지만 저 담배 잎의 애벌레처럼 바로 그 대응 때문에 제3자에게 결정적으로 당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신일지 또 다른 자연일지 혹은 또 다른 인류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인간들이여, 제발 자연이 허락하는 곳까지만 가기로 하자. 더 이상 나가면 그들도 우리를 그냥 두지는 않을 테니까.

저녁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왠지 한국화학회의 세미나를 마치고 나오는 그런 기분이 조금 들었다. 유쾌했다. 실력은 물론 인품도 훌륭하신 그 S교수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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