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자심(不欺自心)
불기자심(不欺自心)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7.07 1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경익/전)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아니 불, 속일 기, 스스로 자, 마음심,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의미이다. 사람은 날마다 혹은 순간순간 자기와 여러 가지 약속을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자기와의 약속을 모두 지키며 사는 사람은 드물다. 서릿발 같은 결심을 했다가도 슬그머니 물러서 버릴 때가 많다. 부도(不渡)란 사업하는 사람만 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도 자기 자신과의 약속한 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부도를 내며 살아가고 있다. 마음의 부도는 알게 모르게 자기 질서를 허물어뜨리고 마침내 부실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란 나이가 들수록 때가 묻기 마련이다. 나는 때 안 묻은 어린이를 좋아한다. 어른이 때 안 묻은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어린이를 본 받아야 한다. 때가 묻지 않으려고 하면 침묵해야 한다. 침묵하는 그대를 벙어리라 말하지 않으리라. 고요히 침묵 속에 묻혀보라 지난날 내 모습이 거울에 비치듯 떠오르게 되리라. 문을 닫아걸고 생각해 보라 가벼운 처신과 조급한 언행 속에 그저 흘려보낸 시간들이 아쉽고 아깝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 것을 반성하면서 자기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아야 한다.

산길에는 주인이 없다. 누구라도 길을 걷는 이가 바로 주인공이다. 사람들은 눈이 어두워 그 도리를 모르고 있을 뿐이다.

한 수행자가 길을 묻자, 어느 선사가 ‘눈앞이 길이다’라고 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저잣거리의 금언(金言)과 다르지 않다. 뜻이 간절하면 보이지 않던 길도 눈앞에 나타나고 마는 법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정답을 두고도 오답만 보고 살아간다. 중국의 조주스님은… ‘큰 도(大道)는 눈앞에 있는데 보기가 어려울 뿐이다.’라고 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택에 가면 기둥에 반일정좌(半日靜銼) 반일독서(半日讀書)라는 주자(朱子)의 말이 붙어있다. 하루의 반을 갈라, 고요히 앉아 자신과 만나고, 그 나머지 반은 책을 읽어 성현과 만난다는 뜻이다. 침묵 속에서만이 나는 나 일 수가 있다. 침묵 속에서는 내 모습이 훤히 보인다. 갈팡질팡하던 길이 훤히 보인다.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시간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시간의 아침은 오늘을 밝히지만 마음의 아침은 내일을 밝힌다. 열광하는 한결같은 삶이 더 아름답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서나 배우게 된다. 부족한 사람에게서는 부족함을, 넘치는 사람에게서는 넘침을 배우게 된다. 스스로를 신뢰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성실할 수 있다. 살다 보면 일이 잘 풀릴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오래가지는 않는다. 살다 보면 일이 잘 풀리지 않은 때도 있다. 이것도 또한 오래 가지는 않는다. 소금 3%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우리 마음 안에 있는 3%의 고운 마음씨가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볼수록, 또한 더욱더 많이 가지고 싶어 할수록 그만큼 행복은 멀어지고 만다는 사실이다. 욕망을 한 켜 덜어내며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해 살며, 무소유를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을 일컬어 우리는 수행자라고 부른다. 여기서 무소유란 모든 것을 다 버린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을 소유하고 산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욕심 없이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향을 싼 종이에는 향내가 묻는 것처럼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려 하고 그들을 존경한다. 그들은 자기를 속이지 않고 자기에게 정직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인생이란 가둠과 풂, 버림과 모음, 떠남과 돌아옴 등등의 반복이다. 그래서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이다. 자신을 가둘 줄도 알고 풀 줄도 알아야 한다. 버릴 줄도 알아야 하고 모을 줄도 알아야 한다. 떠날 줄도 알아야 하고 되돌아올 줄도 알아야 한다. 세상을 살면서 일시적인 행복이란 재물욕, 명예욕, 식욕, 수면욕, 색욕이다. 이를 오욕(五慾)이라 한다. 그러나 영원한 행복이란 도를 깨쳐서 생사해탈을 하는 것이 영원한 행복이다.

성철스님께서 불기자심 즉 자기를 속이지 말라고 했다. 즉 참으로 사는 첫 걸음은 자기를 속이지 않는데 있다. 고 했다. 중국 후한시대의 역사가 반고(班固)가 저술한 역사서 '한서(漢書)'에 보면 "신을 속이는 자는 그 재앙이 삼세(三世)까지 미친다"고 했다. 속이려하지 말 지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