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딸 성적 올리기
조카딸 성적 올리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7.0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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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밭을 매는 곳에선 밭을 잘 매는 사람이 장땡이다. 제 아무리 학력이 높고 돈이 많아도 밭을 매는 데에 잼뱅이라면 그 밭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공장에서는 물건을 잘 만들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학생이라면 공부를 잘 해야 대접을 받는다. 좀 과하게 심술을 부려도, 조금 싸가지가 없이 까불어도 공부를 잘 하면 그냥 봐 준다. 까부는데다 공부까지 못하면 싹수가 없다며 안 봐준다.


나는 일전에 조카딸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고, 함께 밥먹을 사람이 없어 밥을 굶는다고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누군가! 자칭 막가파 소설가가 아닌가. 그게 뭐냐고? 팔리든 안 팔리든 상관하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을 쓰고 내 출판사에서 출간한다. 누가 말릴 수 있을까? 그렇다, 아무도 나를 말릴 순 없다. 막가파 작가랄밖에. 어쨌든 그 인연이 소중하고 신기해서 볼수록 이 이쁜 내 조카딸이 왕따를 당한다는데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가만있기는커녕 체질상 악마와 손잡는 짓 아니면 무슨짓을 해서라도 조카딸의 상황을 바꿔내야 마땅하다.

조카딸은 학생이다. 결국 왕따라는 상황을 변혁해내려면 기본적으로 공부를 잘해야 한다. 이 생각을 하자마자 조카딸의 성적 점검에 들어갔다. 조카딸 성적은 바닥을 길 것까지는 없었지만 많이 아쉽고 어중간한 성적이었다. 하기에 따라 완전 바닥으로 곤두박질하기에도 딱 좋았고, 또한 조금만 위로 끌어당겨주면 껑충 뛰기에도 딱 좋았다. 당연히 나는 껑충 뛰는데 승부를 걸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혼자 공부를 해왔기에 성적 올리기엔 일가견이 있다. 내가 웃는 이유가 있다. 성적을 올리는 일가견이라고는 했지만 이게 별거 아니고 어렵지도 새롭지도 않다.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우리 모두가 공유하며 즐기지는 못하는 상식이라는 말이다. 학생이라면 결국 ‘교과서’다. 게다가 요즘 교과서들은 너무 재미있고 멋있다. 구성과 문장과 디자인과 재질 등 모든 면에서 최고다. 근데 웃기는 게 학교에서 ‘잘나고 극악스런 악(학)부모와 악(학)생들’ 때문에 교과서로 수업을 하는 선생님은 무능하다고 소문이 난다나 어쩐다나. 내가 알 바는 아닌 듯.

성적을 올리자면 우선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학생의 의지가 중요하다. 조카딸은 왕따를 당하느라고 의지는커녕 대인 공포증 속에서 옴싹달싹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조카딸의 엄마인 동서에게 담임선생님께 편지를 전하라고 지시했다. 왕따를 주도하고 있는 아이가 좌지우지 못하는 아이를 선택해서 조카딸과 밥도 함께 먹고 놀게 해달라고 부탁을 넣었다. 조카딸이 아주 의기소침해 있고 다들 아이들인 만큼 부탁 또한 아주 아주 구체적으로 해 달라는 것도 신신당부를 했다. 다행히 담임선생님은 동서의 청을 들어주었다. 아이는 아이라 조카딸은 차츰 빠르게 좋아졌다.

나와 동서는 조카딸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물어서 조카의 행동과 말이 사려깊고 올바르고 예의바르도록 철저히 지도했다. 잘 진행된다 싶더니 결정적으로 성적을 올리자는 얘기만 나오면 조카딸은 ‘부담스럽다’, ‘해도 안 되면 어떡해’, ‘큰엄마는 내 걱정보다 성적 올리기에 더 난리다’… 등등. 별 거지발싸게 같은 두려움에 젖은 말만 주워섬기며 부정적 사고가 깊었다. 게다가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푸느라 그놈의 스마트폰 중독까지 깊어져 있었다.

나는 그런 부정적인 생각과 스마트 폰에 대해 심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체질이다. 거의 노이로제에 가깝다. 그렇잖은가, 스마트폰은 ‘닌텐도’ 대신에 개발된 휴대전화의 탈을 쓴 게임기일 뿐이다. 대기업 재벌의 흉악무도한 상술일 뿐이다. 효과면에서 닌텐도보다 더 해롭다. 그것은 우리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겐 독약이다. 조카딸은 공부하라면 입이 툭 나오다가도 스마트폰만 주면 씨익 쪼갰다.

대기업이 제공한 마약인 스마트폰 중독에 빠진 조카딸이 미욱해서 걍 한대 패버리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은 걸 매번 참으며 넌 분명히 잘할 수 있다고 달랬다. 드디어 기말고사가 다가왔다. 시험은 3일에 걸쳐 진행됐는데 조카딸은 끝까지 요랬다 조랬다 변덕을 부리면서도 곧잘 따라와 주었다. 교과서의 일부를 3번 반복해서 필사를 하라고 했을 때는 죽겠다고 난리를 피우다 다 쓰고 나서는 “어어? 어느새 다 외워졌네”라며 파릇파릇한 싹수를 보였다. 또 수학을 지도할 때는 큰엄마보다 더 빠른 계산력을 보였다.

시험이 끝나고 평점이 20점 가까이 올라 80점 대를 무난히 돌파했다. 조카딸은 “큰엄마, 나 잘했죠?”라고 묻고 “그래 우리 조카 최고다”라는 말을 수십 번 들었다. 모두 모두 감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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