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소설가
황송하게도 나는 왕손을 알고 있다. 방송 드라마나 신문 기사로서가 아니라 내 이웃에 살고 있고 나는 그 사람을 두 가지 이유로 눈 여겨 본다. 한 가지는 보수의 정체를 탐구하기 위해서이고 다른 한 가지는 인생에 대한 탐구를 하기 위해서이다. 다들 그렇겠지만 내게 있어서 그 두 가지 문제는 일면 아주 중요하다. 작가로서도 주요 탐구꺼리이지만 개인적 내 인생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알다가도 모를 이런 사람들의 말과 행동과 선택 때문에 어느새 나라 전체가 이상한 곳이 되어버렸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도통 구분이 안 가는 분위기가 점점 짙어져간다. 그래서, 탐구해야 한다.
그는 스스로 ‘보수’라고 말한다. 처음 그가 나에게 자기는 보수라고 말할 때 아닌 게 아니라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되면서 마치 그 말을 처음 듣는 듯했다. 신문에서나 ‘읽던’ 말을 실제로 들어서 그랬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는 너무도 당당하게 너무도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봐요, 시인 아줌마! 나는 말이야 진짜 보수야!!” 그는 내가 분명히 소설을 쓴다고 말해주었는데 꼭 시인이라고 나를 칭한다. 아마도 시인과 소설가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듯했다. 그야 어쨌든 진짜라니, 가짜 보수도 있나?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 이 사람이 진짜 보수일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그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물론 불쾌감을 동반한 끌림이었다.
대인관계에 있어서 불쾌감은 감춰야 한다. 거기다 나는 내 학문과 인생 탐구를 하기 위해서이니 더욱 조심스럽게 속내를 감춰야 했다. 그리고 더 많은 걸 털어놓게 해야 한다. 진짜 보수니까. 그런데 오히려 지나치게 많은 걸 묻지도 않았는데 털어놔 버렸다. 출신에 대한 자긍심이 강하다 보니 그럴 것이다. 그는 자신이 어떤 집안의 몇 대 손인지를 만날 때마다 떠들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라는데 그는 했던 애기 또 하고 또 하고 했다. 이즘엔 저만큼에 그가 보이면 나는 슬그머니 도망간다.
지난 지방선거 약 두 달 전이었다. 빠릿빠릿한 새 군복에 군모를 쓰고 으스대며 나타났다. 군복이 커서 소매를 둥둥 걷은 팔을 휘휘 저었다. 휘젖는 팔 위에 닻과 해골이 그려진 빨간마크가 선명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나라가 잘 살려면 이거, 이거를 찍어야 한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것으로는 부족한 것 같았던지 ‘첫번째 칸에 도장을 꼭 눌러야 한다니까!!’ 하며 쾍 소리를 질렀다.
이웃사람들은 그런 그가 돌아가고 나면 말없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나는 군복이 어디서 생겼는지 그게 궁금했다. 그가 또 군복을 입고 동네를 왔다갔다 하길래 군복이 멋있다고 일부러 칭찬을 했다. 그랬더니 자신의 얘기에 열중한 나머지 그 군복이 ‘하사품’이라고 실토해버렸다. 어디서 하사한 거냐고 되물었더니 그는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더니 핫바자 방귀 새듯 가버렸다.
그리고 나는 지하철에서 내 이웃의 그가 입었던 소매에 닻과 해골 그림이 빨갛게 새겨진 군복을 보고야 말았다. 늦은 시간 지하철 노약자석을 나란히 차지한 세 노인이 젊은 사람들을 힐금힐금 노려보며 젊은 사람들 욕을 해댔다. “아무 천지도 모르고 노인들 무시하는 것들은 아예 선거를 못하게 혀야혀!! 그게 다 종북이지 뭐야, 빨갱이야, 빨갱이!!!” 그러고 봤더니 그 무렵 우리 주변에 그런 군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아뿔사, 한 군복노인이 나를 노려보는 게 아닌가. 정확히는 내 가슴에 달린 세월호참사 위문 노란 리본을 노려봤다. 이내 양 옆의 두 노인에게 나를 보라고 눈치를 주었다. “요샌 여자년들이 더 지랄을 한대나봐, 조렇게 나대면 집구석이 엉망이겄제 … 살림이나 잘 사르!” 그리곤 다행 내릴 곳이었던지 내려다. 내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 전에 내렸기에 망정이지 큰 싸움 날 뻔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이 내리고도 두 정거장을 더 왔어야 내가 아주 무지하고 무식한 할배들한테 모욕을 당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신이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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