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다큐멘터리를 불러주세요
당신의 다큐멘터리를 불러주세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6.0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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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지/SK에너지
사보편집기자
아이들에게 500원 짜리 동전을 그려 보라고 하면, 가난한 아이들은 실제 동전의 크기보다 크게 그리는 경우가 많다. 결핍감 때문이다. 완벽하지 못한 우리는 저마다의 결핍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때때로 나의 결핍을 타인의 더 큰 불행으로 위로받곤 한다.

입시도, 취직도 재도전 없이 한 방에 이루어낸 친구에게는 구직의 어려움과 탈락의 고배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풍부한 종의 어류들이 헤엄치고 있는 어장을 소유한 친구에게는 짝사랑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타인의 아픔에 귀 기울인다. 그 커다란 결핍을 들으며 나의 작은 결핍을 딛고 일어날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중은 기꺼이, 친구가 하나도 없다던 임재범이 외로울 때에 그를 위로해 줄 ‘여러분’이 되어주었다. 라면만 먹고 노래하며 코리안 드림을 꿈꾸던 상처 입은 야수, 백청강을 보듬어주었다. 그들의 스케치북에 커다란 500원짜리 동전으로 표현된 결핍을 보았기 때문이다.

대중은 탈락과 생존이 공존하는 스릴을 즐기면서도, 그 속에서 한 인간이 역경을 딛고 일어난 성장 다큐멘터리를 원한다. 이태권은 처음부터 많은 멘토들이 탐내던 인재였다. 반면 백청강은 ‘모창이라는 나쁜 버릇을 꼭 고치겠다.’는 약속과 함께, 어렵게 김태원의 멘토 스쿨에 합류할 수 있었다. 이태권에게 매주 발전을 위한 과제들이 주어졌다면, 백청강에게는 단점 극복을 위한 과제들이 주어졌다. 멘토 스쿨 과정에서 백청강의 개인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백청강은 동정심에 호소하려는 나약함 대신, 순수한 패기와 열정으로 당차게 현실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택했다. 이에 대중은 노력이 결실을 이루기를 함께 바라게 되었다. 연변 청년의 코리안 드림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지켜봄으로써 인간승리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면접이나 시험과 같은 시험대에 놓였을 때, 어떤 외압도, 부정부패도 없이 공정하게 평가받기를 원한다. 그와 동시에 이 순간이 내게는 너무도 절실한 인생의 기회임을 알아주기를 원한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우리를 타인의 드라마에 반응하게 만든다. 나의 인생에도 김태원같은, 내 절실함에 손 내밀어주는 이가 등장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개인사를 지나치게 이슈화하여 대중의 마음을 억지로 움직이려 했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슈는 찰나다. 토요일 하루를 달구었던 백청강의 우승이라는 이슈는,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챔스 결승전에서의 메시와 바르샤의 저력이라는 이슈로 대체되었다. 유소년 시절 성장호르몬 장애를 앓던 메시를 아낌없이 서포트 해준 바르샤에, 그 드라마틱한 성장 스토리에 눈물 흘려준 팬들에게, 메시는 오직 축구로 보답한다. 백청강이 앞으로 대중에게 보여 주어야 할 모습도 그와 다르지 않다. 감정을, 인생을 담아 노래하는 것이다. 그의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는 대신, 노래에 담아 불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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