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생긴 일
추석날 생긴 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9.1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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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점/시인ㆍ경남간호사회 부회장
사람의 마음은 일초에 십만 팔천 번이나 오락가락한다는 것을 체험하는 일이 추석날 내게 일어났다. 핸드백에 넣어둔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온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지갑 안에 든 것들의 목록을 헤아렸다. 필름이란 것이 이렇게 빠르게 도는 것이구나 싶었다. 각종 카드와 신분증, 아들이 건네준 몇 장의 백불짜리 달러와 지폐, 상품권 등등 소중한 것들로 빽빽한 그것이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한껏 굴러가던 머리가 한순간 멈춰버렸다. 폰뱅킹을 위해 그저께 밤에 카드를 꺼냈고 어제 아침까지도 멀쩡했는데 그 이후가 헤아려지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일단 몇 군데의 카드사에 분실신고를 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진정되고 천천히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기왕 잃은 것은 잃은 것이라는 오기와 배짱이 생겼다. 카드를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게 가족 이었는데 외출중인 그들은 전화만 한두 번 할 뿐, 집으로 돌아와 내 걱정을 대신해주지 않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는 공지영의 얘기를 공감하게 되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서 가는 거라는 오기가 생겼다. 인생을 칠십까지 본다 해도 내겐 십오 년 이상 남았는데 앞으로 이런 사고가 또 안생기라는 법이 있을까 싶어 더 쓸쓸해졌다. 산다는 것이 톱밥난로에 던져지는 장작처럼 따뜻하고 아름답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생은 때로는 슬프고 또 가끔은 아프고 외로운 것이 아니던가.

결국 승용차 구석에서 지갑은 다시 찾았지만 다행이라는 느낌보다 우울함이 더 컸다. 명절날 하필이면 엉뚱한 사건으로 진을 뺀 나 자신에 대해서도 부아가 났다.

어떤 이는 시가에 다녀오며 명절을 쇠는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아 이혼소송을 했다고 한다. 또한 법원에서는 부부 서로에게 조금씩 원인제공 혐의가 있으므로 위자료는 줄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거나 이거나 마찬가지로 세상은 이렇게 정이나 사랑 따윈 귀하고 자꾸 메말라간다. 난청의 것들이 많은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뭉개진 기억을 잘 다스리는 일이 소중할 것 같다. 끝까지 정신 놓지 않고 잘 살아갈 일이 자꾸 걱정되는 추석이다.

보름달은 언제나 그만큼의 크기로 떠오르는데 사람의 기억만 불행히도 나이처럼 늙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중천에 뜬 달을 한정없이 닮고 싶은 금년 추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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