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하지 않는 일본
반성하지 않는 일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8.07 12: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수곤/밀양동명고 교사·경남국학원 이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5년 8월 6일 미군 폭격기 B-29로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승무원 시어도어 반커크가 7월 28일 93세를 일기로 숨졌다. 4080㎏짜리 원자폭탄으로 약 14만명이 숨졌고, 그 3일 후 나가사키에 또 원폭을 투하하여 일본은 결국 항복을 한다.


당시 미국의 원폭 투하 논란에 대해 “전쟁이 더 빨리 끝나 더 많은 인명손실을 막을 수 있었다”며 원폭투하 필요성을 궤변하기도 했다. 현재 나가사키 평화의 공원에는 원폭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리는 형상들이 서 있고, 그 공원 아래 원폭자료관에 가보면 당시 참담한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보는 사람마다 이제 어떤 이유로던 지구에서 이런 전쟁은 없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피해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일본의 제국주의 망상에 대하여 그리고 일본의 침략야욕에 대하여 반성한다는 말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일본제국주의가 패망할 때 마지막 조선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는 이 땅을 떠나면서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내 장담하건대, 조선 국민이 제 정신을 차려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 국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 국민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일본식민 교육의 노예로 전락했다. 그리고 나 아베는 다시 돌아온다”라는 망발을 하고 갔다.

일제가 패망하여 물러난 지 7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우리는 그 식민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식민교육은 1919년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3·1운동으로 일명 무단정치에서 문화정치로 바꾼 다면서 제5대 조선총독 사이토마고토는 교육 시책에서 찾을 수가 있다.

“먼저 조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역사와 전통을 알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잃게 하고, 조선인의 조상과 선인의 무위, 무능, 악행을 들쳐 내어 가르침으로써 조선 청소년들이 부조(父祖)를 멸시하도록 만들고, 결과로 조선 청소년들이 자국의 인물과 사적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여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한 후, 그때에 일본 사적, 일본 인물, 일본 문화를 교육하면 동화의 효과가 클 것이다. 이것이 조선인을 반(半) 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이다”라고 했다.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조선의 유구한 역사를 줄이기 위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4국의 역사를 조작하여 삼국이전의 역사를 모두 신화의 역사로 조작하면서 국조 단군을 곰의 자식으로 만들었다. 그 중심에 조선사편수회가 있었는데 이완용, 권중현 등의 친일 인사를 고문으로 위촉했다. 그리고 쓰에마시나, 이마니시 같은 우익 학자를 위원으로, 이완용의 술질인 이병도와 신석호 등의 한국인 학자를 실무 연구진으로 기용했다.

90년대 초 일부 식민사관에서 깨어나지 못한 서양종교인들이 단군상의 훼손하다 국제적인 웃음꺼리가 되기도 했다. 일제는 곰, 과 호랑이를 숭상하는 부족의 공주라고 해석해야 할 삼국유사를 우리의 조상을 곰으로 바꾸는 식민사관을 조작했지만 이병도는 1989년 세상을 하직하면서 단군신화는 일제가 조작한 것이라고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제 우리 국학사관으로 사대, 식민사관에서 깨어나 진정한 홍익인간으로 지구인이 되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