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역설(逆說)
우리시대의 역설(逆說)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8.1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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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역설(逆說) : 언뜻 보면 진리에 어긋나는 것 같으나 사실은 그 속에 일종의 진리를 품은 말. 국어사전에서 풀이하고 있는 해석, Paradox : 틀린 것 같으면서도 옳은 의론. 영어사전에서 풀이하고 있는 해석이다. 겉으로는 말이 안 되는, 자기 모순적이고 부조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해석의 과정을 거쳤을 때 그 의미가 진실을 말한다. 그러니까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지만 함축적인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는 얘기다.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모자란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다. 너무 분별없이 소비하고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성급히 화를 낸다. 너무 많이 마시고 너무 많이 피우고 너무 늦게까지 깨어 있고 너무 지쳐서 일어나며 너무 적게 책을 읽고, 텔레비전은 너무 많이 본다.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가치는 더 줄어들었다. 말은 너무 많이 하고 거짓말은 너무 자주 한다. 생활비를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고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는 법은 상실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다. 외계(外界)를 정복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안의 세계는 잃어버렸다. 공기 정화기는 갖고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었고 원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을 부수지는 못한다. 키는 커졌지만 인품은 왜소해지고 이익은 더 많이 추구하지만 관계는 더 나빠졌다. 세계 평화를 더 많이 얘기하지만 전쟁은 더 많아지고 있다. 더 빨라진 고속철도 더 편리한 일회용 기저귀 더 많은 광고 전단 그리고 더 줄어든 양심, 쾌락을 느끼게 하는 더 많은 약들 그리고 더 느끼기 어려워진 행복.

이 역설은 제프 딕슨(오스트리아·CEO 1940~)이 지난 1999년 4월 미국 콜로라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평소 따돌림을 당해 온 두 학생이 교사와 급우 등 13명을 살해하고 자살한 총기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참담함과 시대의 아픔을 참지 못해 인터넷 사이트에 ‘우리 시대의 역설’이라는 칼럼을 올렸는데, 아직도 이 칼럼이 실린 인터넷 사이트에는 네티즌들이 들어와 한두 줄씩 역설을 보태고 있다. 역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는 얘기다. 필자도 역설을 보태어 본다.

수명은 길어졌지만 삶을 성찰하는 시간은 도리어 짧아졌다. 인터넷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검색하지만 제 마음속은 한 번도 살피지 않는다. 사이버 공간이 편리해지긴 했지만 엽기·성매매·음란물들로 병들어 가고 있다. ‘정의 사회 구현’과 ‘보통 사람의 시대’를 외치던 권력자들이 보통 사람은 꿈도 꾸지 못할 천문학적 액수의 뇌물을 받은 범죄자로 옥살이까지 한다. 추징금 납부를 미뤄오는 그 불굴의 탐욕 앞에 보통 사람들의 가슴은 구멍이라도 뚫린 듯 허탈하기만 하다. 본인이나 아들의 병역문제가 투명하지 못한 고위 공직자들이 힘없는 서민의 아들딸에게 휴전선을 떠맡기고 짐짓 국가안보를 걱정한다. 거리에서 터져야 할 최루가스는 국회 안에서 터지고, 입으로는 희망의 정치를 말하면서 허구한 날 정쟁만 일삼는 이 나라 정치권은 언제까지 ‘희망 없는 집단’으로 남아있을 것인가? 시급한 민생 법안들은 희망 없이 수북이 쌓여만 가니 국회 무용론·해산론까지 일고 있지 않은가. 일부 종교 지도자들이란 사람들이 내란음모죄로 1심에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은 정치인이 본인은 진정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있는데 2심 재판(징역9년 선고)에 앞서 선처해달라는 탄원서를 내고 있으니 이 나라 종교지도자들이란 사람들 제 정신인가? 인터넷과 언론에서는 종교지도자들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온 나라를 들끓게 하고 있으며 이들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으니 이 사람들 어느 나라 종교지도자들 인가? 이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한 맺힌 소리가 들리지 않은가? 성경과 불경 어디에 죄를 뉘우치지 않는 자를 용서하라는 구절이 있었던가? 묻고 싶다. 대한민국 헌법을 가르치는 대학 교수가 대한민국을 찾아 탈북 한 동포들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헌법 교수의 머릿속에는 어떤 헌법정신이 들어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너무 앞만 보며 달려왔다. 우리는 말이 너무 많았다.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밖으로만 향하던 마음을 거두어 황폐해진 내면을 돌아보아야 할 때다. ‘시대의 역설’이 없는 세상은 이상향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구조가 복잡해지고 다양화될수록 ‘시대의 역설’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시대의 역설’이 시대의 병폐나 아픔을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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