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워이 빽남바 11번”
“최동워이 빽남바 11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9.18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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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조/Premiere 발레단 단장
최근 한 이틀 동안 많이 바쁘다. 틈이 날 때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는 한 가지 일 때문에. 이 일, “롯데 자이언츠 투수 최동원”과 관련된 기사라면 모조리 읽는 이 일 때문에.

상당수의 기사는 “전 한화 2군 감독”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지만, 내 가슴에는 1980년대를 호령한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로만 남아있을 뿐이기에 감히 앞서와 같은 표현을 쓰고야 말았다. 독자의 아량을 바란다. 그리고 하나 더. ‘등번호’라는 말 대신 “빽남바”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을 이해해 주십사 부탁드리고 싶다. 간단히 변명을 하자면, 저 1984년으로 잠시 돌아가기 위해, 그 해 부산 경남 사람들에게 프로야구 우승이라는 잊지 못할, 잊을 수 없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잊어서는 안 될 값진 선물을 해 준 한 사람을 아련한 향수 속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언어적 장치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마지막, 간간히 보시게 될 사투리도…2011년 9월 14일 오전 2시를 갓 넘은 그 때... 한 손에 야구공을 움켜쥔 - 프로 통산 501호 탈삼진을 기록하게 된 공이라고도 한다 - “불세출(不世出)”의 투수는 그렇게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불세출이란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좀처럼 세상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 하지만 한 번 나타났다면 두 번 다시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사람. 그러한 사람을 일컬어 불세출이라 한다. 가슴이 먹먹할 따름이다. 그리도 허망하게 가시다니…

아직도 뚜렷이 기억하는 그 장면. 1984년 가을. 초등학교 5학년의 한 소년은 그의 형들 그리고 형들의 친구들과 함께 한국시리즈 7차전을 TV로 보고 있다. 유두열의 타석. 형 친구들 중 누군가가 외친다. “유두여리 유들유들하이 한방 치라!”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쳐낸 역전 3점 홈런, 그 이후에 되살아난 한 투수의 불꽃 투구… 그 투수는 어린 소년의 가슴에 영웅의 모습으로 각인되고, 소년은 잘 하지도 못하는 야구를 하러 다니기에 바쁘다. 그 투수의 역동적인 투구 폼을 흉내 내어 가며. 야구를 하다가 친구의 배트에 안경 쓴 얼굴을 맞아 열 몇 바늘을 꿰매는, 자칫 잘못되었으면 한 쪽 눈을 상할 뻔한 사고가 있고서야 소년은 글러브를 손에서 놓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년이 그를 잊는 법은 결코 없었다.

철이 들면서 미국을 싫어하게 된 소년에게 미국이 종주국인 야구는 어느 새인가 시시한 무엇인가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서른을 넘어 마흔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막 지난 재작년은 그 감정도 거의 사그라질 무렵. 그 해 딱 한 번, 소년은 사직 구장으로 향한다. 구장안의 자이언츠 숍에서 반짝이는 하늘색의 원정 경기복. 1984년 7차전 당시 그 투수가 입었던 바로 그것.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다. ‘한 개 사까? 마까? 산다 카믄 뭐를 찍지? 역시 거게 찍을 이름하고 빽남바는 당연히 "11번 최동워이"라야 되는거 아이겠나?’ 문득 떠오르는 어린 시절 소년의 영웅. 그가 부산에 없기에 생기는 커다란 아쉬움에 마음이 아려온다. 하지만, 한참을 망설이다 ‘일단은’ 4만원을 아끼기로 한다. ‘다음에 와서 하믄 되지 뭐…’ 그런데, 그 ‘다음’이 없어져버렸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천추의 한’이 될 일이다. 단돈 4만원을 아껴서 될 일이 아니었다. 그가 소년에게 준 그 큰 선물을 단돈 4만원에 비할 일인가? 소년은 그렇게라도 그를 기억했어야만 했다. 살아있는 그를, 살아있지만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고향을 그리기만 하던 그를. 혼자만이라도 기억하려 했어야 했다. 그리했어야만 했다. 불꽃같은 삶, 부침(浮沈)을 거듭하던 그의 삶은 그가 즐겨 던지던 불같은 강속구와 낙차 큰 커브와도 같았다. 사랑하던 야구를 꼭 닮은 그만의 삶을 살아가며 남긴 수많은 기록들. 선발, 중간 계투, 셋업 맨, 마무리 등의 투수분업화가 생기기 이전의 체계적이지 않았던 야구를 하던 시절의 터무니없는 무엇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그의 족적이 너무 깊고 크다. 그리고 그가 견뎌내어야만 했던 ‘앞서가는 자가 맞아야 하는 뭇매’. 이 시대는 어찌 보면 그 매를 맞기가 무서운 사람들(나를 포함한)만이 득시글대는 세상일는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이 그를 애도한다. 아이러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 최동워이 빽남바 11번 ”은 불멸(不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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