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생각한다
‘사람’을 생각한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8.2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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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2014년 한국의 풍경은 어둡다. 비단 세월호 때문만도 아니다. 윤 일병 사망사건 때문만도 아니다. 줄줄이 낙마하는 공직후보자들 때문만도 아니다. 매일매일 신문, TV, 인터넷에 올라오는 뉴스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 어둡고 칙칙한 풍경 속에서 나는 우리 사회를 덮고 있는 이 어두운 구름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 아니 굳이 일부러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그 답은 이미 뻔하다. 사람들도 대개는 그 답을 알고 있다. 나는 그것을 ‘사람의 실종’, 혹은 ‘사람의 부실’이라고 정리해 본다. 아니, 세상엔 온통 사람 천지고 그 사람들이 멀쩡하게 거리를 활보하는데 실종이고 부실이라니. 누군가는 흰눈을 뜰 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럴까. 그 사람들이 정말로 다 사람이고 멀쩡한 걸까?

아니다. 좀 과장일지는 모르겠으나 그 중에는 사람의 탈을 쓴 괴물들도 우글거린다. (뉴스와 드라마들만 보더라도 이 사실은 입증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나는 우리 사회가 ‘사람’에 대한 기대를 포기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선 무엇보다도 ‘사람’을 길러내는 것을 그 본질로 하는 학교에서부터 ‘사람’에 대한 관심 따위는 설 땅이 없다. 어쩌면 가정도 별반 다를 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는 돈과 출세, 이른바 세상에서의 성공으로 모아진다. 그것만 된다면 ‘사람’이 아니라도 상관이 없다. 괴물이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오히려 많은 경우 출세를 위한 걸림돌이 된다. 나는 이러한 현상들이 너무나 가슴 아프고 우려스럽다.

사람이란 가정과 학교와 사회라는 3대 교육채널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 중 그 어느 것도 지금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정과 학교는 사회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사회가 그 인간적 건전성을 갖지 못하면 어떤 점에서는 가정도 학교도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 사회를, 엉망진창인 이 사회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사람 같은 사람이 돈과 출세를 거머쥐도록 구조를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 조명해주고 칭송해야 한다. 누가? 지금은 신문과 TV와 인터넷에게 그 책임이 주어져 있다. 이제 이른바 문사철은 거의 그 기능을 상실했다. 그나마 그것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다면 신문과 TV와 인터넷이 그것들을 불러줘야 한다. 그런데 이것들은 그것에 대해 인색한 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람’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 엄청난 철학적 주제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지 않지만, 나는 그 하나의 대답으로서 ‘사람에 대한 사람의 태도’를 제시하고 싶다. 더 간단히 말해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이 ‘사람’의 기준인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곧 괴물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의미의 괴물이 넘쳐나는 것이다. 그런 괴물들이 2014년의 이 한국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다.

그들은 사람에 대해 함부로 생각하고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한다. 그들의 ‘함부로’는 ‘남’을, ‘타인’을, ‘다른 사람들’을, 사람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존경 따위는 아예 없고 기본적인 존중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을 마구 대한다. 그래서 남이야 배와 함께 바다에 빠져 죽든 말든 내 돈만 챙기면 그만인 것이고, 그래서 내 기분만 좋다면 남에게는 욕이야 물론 오물을 먹여도, 파리를 먹여도, 물건을 빼앗아도, 또 죽도록 패도 그만인 것이다.

문제는 그런 것을 ‘악’인 줄도 모르는 가치관이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 무시 못 할 세력으로 자라 우리 사회를 망가뜨리고 있다. 어떻게든 이것을 시정해 보자. 그러기 위해, ‘사람’에 대해서 관심을 갖자. 어려서부터 사람이 되는 훈련을 시키자.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훈련을 시키자.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하라’는 예수의 말과 ‘너에게 싫은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공자의 말은 바로 그런 ‘사람’을 만들기 위해 2000년 넘게 펄럭이고 있던 깃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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