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가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8.25 09: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영/소설가

여름은 갔지만 아직 가을은 아닌 이맘때, 처서다. 무성한 여름은 언제라도 장관이고 파워풀하다. 여름엔 길가 풀조차 세상을 제압할 기세로 자란다. 도시의 보도블럭 사이로도 풀이 자란다. 틈만 있으면 풀이 자란다. 벽돌 벽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이 생겼고 그 새로 라일락 어린 가지가 삐쭉이 나오는가 했더니 이듬해엔 그 가지에 꽃이 피길래 확 가지를 분질러 버렸다. 좀 징그러워서.


아침 조깅을 하는 때면 골목 저 너머로 보이는 산풍경에 늘 감사하다. 저 산에 저 이파리들이 저렇게 푸른 동안 나도 내 인생을 끝까지 살리라, 기원하며 달린다. 온 삼라만상이, 이 나라가, 이 동네가, 저의 가정이 오늘 하루도 더욱 사려깊고 올바르고 예의 바르게 살아 행복한 하루를 살기를 기원한다. 특히 이 나라가 그래도, 그래도 아주 조금씩이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기원한다.

지금 남쪽 지방에선 비가 쏟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경기북부인 이곳은 바람도 없이 무덥다. 다가오는 추석이 바로 백로다. 백로가 오기 전까지는 한낮의 더위는 이렇게 여름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내리쬐는 햇살을 피해 그늘에 있으면 견딜 만 한 게 또한 처서 때의 날씨다. 잠시 그늘에 쉬며 정신을 가다듬으면 문덕 가는 여름이 아쉽기도 하다. 그러다 까무룩 세월의 속도에 질려 슬퍼진다.

세월의 속도라…. 세월 세월? 이렇게 글이 안 되기는 드물다. 애써 세월호를 잊으려 하니 그런 모양이다. 그 이야기를 안 하자니 글이 안 나간다. 누군가, 애써 기를 쓰고 나더러 세월호를 잊으라고 아무리 종용해도 잊혀지지 않는다. 잊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그렇게 의문투성이의 사건을 있을 수가 있을까. 왜 스스로 탈출한 사람들 외에는 한 명도 구조하지 않았을까? 왜 해경은 배 안에 사람이 있고 배가 가라앉으면 그 사람들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구조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구조하겠다고 달려온 진도 주민들을 구조하지 못하게 말렸을까? 왜 다 구조했다고 거짓보도를 했을까? 사고 당일 대통령은 직무실에 있었던 건가 없었던 건가? 왜 아직도 배 안에 있는 실종자를 찾지 못하는 것일까? 유병언은 진짜 죽은 것일까? 오직 유병언만이 세월호 사건의 책임자 맞는가? 선장의 책임은? 해경의 책임은? 해경의 총책임자인 대통령은 책임이 없는 것일까? 대통령은 왜 정부만 탓하지? 자신이 정부의 수반이 아니던가? 왜 관료들만 탓하지? 그 관료의 총 책임자이지 않은가?

게다가 진실을 밝혀달라며 애원하는 유가족은 왜 외면 당하지? 진실을 밝혀달라고 아무리 애원을 해도 안 들어주니까 마지막 언어인 ‘단식’으로 애원하다 40일을 굶어 이제 죽어가고 있는 유가족조차도 왜 외면하지? 만나서 빈말이라도 유족들의 말대로 진실을 밝히겠다고 하면 단식을 풀겠다는데 왜 안 만나주지? 왜 국가 원수가 국민을 만나는 걸 싫어하지?

이 많은 의문들이 풀려야 잊던지 말던지 하겠는데…. 이 수많은 의문들이 풀리지 않으니 못 잊는 것보다 갑갑해서 진짜 미치겠다. 내가 이럴진데 그 참사사고를 당한 유가족은 마음이 어떻겠는가. 왜 하필 그날이었지? 왜 하필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지? 왜 하필 제주가는 배였지? 왜 하필 진도 앞바다였지? 왜 하필 세월호였지? 왜 우리 아이는 그 배를 탔지? 왜 하필 내 아이지? 유가족이 아닌 사람들과는 또 다른 의문들에 시달려 얼마나 고통스럽겠느냔 말이다. 진정 풀릴 길도 없는 의문들이 잖은가!! 이런 유가족들이 납득할 수 있는 진실을 밝혀주는 게 도리지 않을까?

진실을 밝혀달라며 무려 40일을 단식한 유가족의 몸을 보고 말았다. 목불인견. 다리에 근육이 다 말라붙었다. 사람은 근육이 있어야 힘을 쓰는데 다리에 근육이 없으니 지팡이를 짚고 걷다가 이내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단다. 그 유가족은 지팡이를 짚고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걸어갔다. 게다가 만남을 거절을 당했으니 쓰러질만도 하다.

교황이 와서 대화하라고, 타인에게 마음을 열어라는 말과 마음을 남기고 간 게 불과 며칠 전인데. 교황의 말을 귀로 들어 마음에 새기지 못하고 콧구멍으로 들어 똥구멍으로 흘려보냈을까? 그리고 왜 갑자기 여기저기서 얼음을 뒤집어쓰는 걸까? 여름도 다 지나가고 처선데. 얼음이 진실을 망각하는 데 특효약이라도 된다는 걸까? 정직하게 말하자면 진실을 외면한 그 어떤 생쇼도 눈에도 귀에도 안 들어온다. 다만 불쾌할 뿐이다. 다만, 분노할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