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걸음질
뒷걸음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0.0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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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경남수필문학회 마산문협 회원·생태활동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강변길을 걷는다. 작은 읍내지만 하천을 따라서 반듯하게 만들어진 길이라 운동을 겸하여 오가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친환경 하천을 만든다고 하면서, 붙박이로 살던 달뿌리풀이며 물봉선을 모조리 걷어내어 버렸다. 다른 곳에서는 잘 정비했던 개울도 오히려 구불구불한 자연 하천으로 되돌린다는데, 바닥의 자갈을 다 긁어내어 싱거운 개천으로 만들어 놓았다. 집채만 한 바위를 가져다 둑을 쌓고, 곳곳을 막아 물을 가두었다. 물고기들의 쉼터였던 갯버들 군락지는 말끔한 둔치로 변해 버렸다. 생태가 바뀌다 보니 귀화식물인 가시상치며 돼지풀만 제 세상을 만난 듯이 키 자랑을 하고 있다. 자연 상태의 하천을 없앤다고 투덜거리던 나로서야 입맛이 씁쓰레하지만, 걷기 좋은 길이 생겼으니 가끔은 찾게 되는 것이다.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 다양도 하다. 앞뒤로 손을 크게 휘저으며 걷는 사람, 뛰듯이 빠르게 걷는 사람, 손뼉을 치며 걷는 사람들까지 나름의 방식대로 열심이다. 여유롭게 사색하며 거니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운동으로 걷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걷는 것을 운동으로 한다고 하니 문득, 우스운 생각이 든다. 초등학생 꼬맹이도 예사로 오가던 십리길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자란 사람들이 요즈음은 집 앞에 있는 시장에 갈 때도 차를 몰고 가는 형편이니, 걷는 것을 운동 삼아 한다고 해서 그리 새삼스러울 일도 아닌 듯하다.

인적이 드문 곳에 이르러서는 뒷걸음질을 해본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기우뚱기우뚱, 좌우로 오가는 걸음걸이가 영 어색하다. 그러다가 발이 엇갈려 길바닥에 철퍼덕 넘어지며 기어코 험한 꼴을 당하고 만다. 딴에는 똑바로 걷느라고 걸은 걸음인지라 애먼 길 탓을 하며 누가 보기라도 할까 주변을 둘러본다. 이것도 운동이려니 생각해서 하는 것이지 평소에 내가 뒷걸음질 한번 해 본 적이 있었던가. 한동안 갈지자걸음을 하다 보니 그것도 요령이 생긴다. 지나온 길을 잘 살펴서 다가올 길이 어떻게 변할지를 대충이나마 알게 된 것이다.

걸음에 여유가 생기니 방금 지나온 뒷길이 눈에 들어온다. 키다리 억새도 보이고, 띄엄띄엄하게 놓인 징검다리도 보인다. 앞으로 걸을 때에는 보았으되 의식하지 못했던 풍경들이다.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처럼 방금 지나온 길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지금의 나는 과거를 바라보면서 보이지도 않는 미래의 길로 기우뚱기우뚱 뒷걸음질하며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서투르고 비뚤거리는 걸음이다. 잠시 멈추고 지나온 길을 되짚어본다. 내가 걸어온 길이 저런 모습이었구나. 다리를 건너고, 풀숲 사이를 거닐었다. 문득, ‘지나쳐온 저 길이 지금껏 내가 걸어온 인생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미래의 나는 과거로부터 흘러 내려온 물길을 따라간다. 지난날은 이미 넘어 와버린 호수와도 같은 것. 어느 사이엔가 기억조차 아득할 만큼, 멀리도 흘러와 버린 시간이다. 행여, 바쁜 현실을 핑계로 여과 없이 흘러온 내 삶의 물줄기가 비뚤어지지나 않았을까. 캄캄해져오는 밤하늘처럼 두려운 생각이 밀려든다.

양손을 열심히 휘저으며 앞으로 내달릴 때는 보이지도 않더니, 뒤돌아 뒷걸음질을 하니 강변의 야경이 당연한 듯 다가온다. 느린 걸음 덕분에 좌우를 기웃거리기도 하고, 밤하늘을 올려다볼 여유가 생긴 모양이다. 그래, 천천히 걸어가면서 가끔은 하늘도 보고, 이웃도 보며 살자. 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이도 돌아보고, 자주는 아닐지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무엇인가도 해 가면서 살아 보자.

뒷걸음질 하면서 우연히 올려다본 하늘에는 북두칠성이 웃고 있다. 은하수 냇가에 점점이 박힌 모래알들, 그중에는 내 별도 있겠지. 눈에 띄게 반짝이지 않는, 무리속의 모래알갱이이어도 좋다. 깨알 같은 별들이 모여, 저 한 없이 넓은 은하수가 되는 것이리니. ‘지나온 과거를 바라보면서 보이지 않는 미래로 미루어 나아가는 것’ 어쩌면 세상살이는 서투른 뒷걸음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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