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음
아무것도 하지 않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0.0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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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체험만큼 훌륭한 스승은 없다’ 흔히 듣는 말이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이 말이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최근에 한 가지 체험을 하면서 그 체험을 통해 제대로 배운 철학이 하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절대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무슨 말장난처럼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이 말에는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철학적 의미가 숨어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아무래도 좀 과로를 한 탓인지 몸에 약간의 무리가 왔다. 의사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좀 쉬라고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약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동안 일손을 놓고 쉬어 봤다. 그런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일손을 놓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건만 몸이 근질근질 하다고 할까, 마음이 불안불안 하다고 할까, 아무튼 머릿속에서 혹은 마음속에서 뭔가 나도 모르는 내가 어떤 일거리를 찾아 열심히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거 무슨 일중독인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도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우리 같은 철학자에게는 생각한다는 것이 일종의 ‘업무’이기도 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말이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파스칼의 말도 넓게 보면 그런 모습의 일단을 보여준다. ‘쳇, 이 무슨 팔자람’ 하면서 나는 그 ‘생각’조차도 놓아보려 하지만 정말이지 그건 쉽지 않다.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먹지 않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욕망’을 놓는 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도 더 힘든 일인지도 모르겠다.

만일 인간이 이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체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경지에 오르는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노자에 보면 ‘위무위’(爲無爲)와 ‘무위지익’(無爲之益)이라는 말이 나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라고 하는 어떤 ‘함’에 대해서 그는 그 높은 가치를 논하는 것이다. 텅 빈 그릇의 효용이나 수레바퀴의 빈 공간이 지니는 효용과도 연결된 제법 유명한 철학이기도 하다. 논어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음’(無爲)으로써 제대로 큰 정치를 한 순임금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무위’가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어떤 드높은 경지임을 알려주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물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든 일에 대해 뒷짐을 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 열심히 무언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이 두 가지, 즉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은 모순된다. 모순이란 동시에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세계는 단순한 논리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임을 알아야 한다. 현실에서는 모순인 이 두 가지가 다 필요하고 또한 다 가능할 수 있다. 간단하다. 어떤 때는 무언가를 해야 하고 어떤 때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는 무언가를 해야 하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경우의 수는 너무나도 많다.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몸이 좀 회복된다면 나는 또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 남들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해야 할 경우와 하지 말아야 할 경우를, 해야 할 일들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잘 살펴야 한다.

이런 철학으로 지금의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한번 둘러본다. 해야 할 일들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엉망진창으로 꼬여 있다. 해야 할 사람들과 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완전히 뒤집혀 있다. 적지 않은 국민들이 저 거들먹거리는 높으신 분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하려면 제발 좀 아무것도 하지 말아 주십사 라고. 국회 같은 것은 차라리 해체해 주십사 라고. 이 나라의 정치도 나처럼 좀 과로한 것 같으니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쉬어보는 것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그러고 보니 이 글을 쓴답시고 또 무언가를 하고 말았다. 발언도 일종의 병이다. 아무래도 철학자의 직업병이 아닐까 싶다. 의사 선생님, 이럴 때는 무슨 좋은 처방이 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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