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친구들
진해 친구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0.0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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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진해는 군항제의 도시이다. 벚꽃의 도시이기도 하고 해군의 도시이고 또 도시형태로는 거미줄형 도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진해는 작은 도시이다. 나는 어릴 때나 청년기에는 진해와 별로 관련이 없는 듯이 보였다. 비교적 친한 친구가 두 사람이 진해에 살고 있다는 것 외에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 비교적 친한 친구 두 사람이 결혼을 해서까지 진해에 살고 있으며 또한 늙어가고 있다. 게다가 나는 해마다 두 번씩 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진해로 달려가곤 한다. 내가 사는 곳이 경기북부니까 나는 꽤나 멀리 달려서야 친구들과 진해를 볼수 있다.


진해에 가면 친구들만 보는 게 아니다. ‘울 옴마’도 뵐 수 있다. 나는 어제도 진해에 다녀왔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서부터 슬프도록 행복했다. 진정한 행복은 슬픔과 이어져 있다는 걸 버스에서 진짜로 실감했다. 시를 좋아하며 식당을 하는 친구에게 줄 책 몇 권과 키가 커며 피부관리가게를 하는 친구에게 줄 금일봉을 들고 집을 나섰다.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진해가는 차는 1시간 반이나 기다려야 탈 수 있었다. 처음 조금 난감하다가 친구에게 줄 책을 꺼냈다. 소설가인 주제에 바쁘다는 핑계로 책도 못 읽는데 이럴 때 한 권 읽으면 딱이겠다, 한 거지. ‘은교’ 첫 장을 펴며 한수산 선생님과 박범신 선생님은 늘 햇갈린다고 자신에게 투덜거리며 터미널 휴게실에서 책을 읽었다. 은교는 단번에 나를 매료시켰다. 감동이란 힘이 센 것이어서 엉뚱한데 불똥이 튀었다.

진주의 김장하 선생님께 감동의 물결이 닿고 말았다. 나는 주체를 못하고 울었다. 너무나 행복해서 울었다. 서럽도록 고마워서 울었다. 가슴이 타도록 그 님의 마음이 경애로워서 울었다. 이토록 감사한데 왜 이렇게 슬플까 생각하며 울었다. 내 이십 대 후반에 소설을 쓰고자 마음먹고 40이 되어서야 ‘진주가을 문예’를 통해 거금 1000만원을 받으며 등단했다. 다음 해 ‘실천문학’을 통해 재등단하며 아주 잠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느라고 ‘진주 가을 문예’의 재단이사장님인 김장하 선생님의 은혜와 음덕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이후 십년의 나의 실패는 당연했다. 그러나 십년간이나 선생님을 몰라 뵀던 건 아니다. 다행히 또 다른 진주의 아름다운 사람 박노정 가을 문예 운영위원장님이 전화를 주셔서 해마다 시상식에 참여하면서 비로소 나는 김장하 선생님의 차라리 슬픈 고결한 마음을 차츰 배우고 존경하게 되었다.

두 분 선생님에 대해선 이렇게 간단히 이야기할 것은 아니다. 다음 글에서 본격적으로 말씀드리기로 하자. 그래서 어째든 나는 진해가 아니라 진주와 김장하 선생님을 생각하며 책을 접고 한참을 울었다. 울면서 다짐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마음을 평생 이어가겠습니다, 라고 온 마음으로 결의했다. 결국 책을 다 읽지 못하고 겨우 반을 조금 넘게 읽었다. 그렇기는 해도 그것만으로 감동 차고 넘쳤다. 그 감동을 아주 실감나게 여기에 기록할 수도 있겠는데 역시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애초에 진해와 두 친구와 ‘울 옴마’에 대해서 얘기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이는 또 지면상 다 하지 못하겠다.

가을은 이렇게 감동 자체다. 실로 감동을 주체를 못하겠다. 옴마와 두 친구를 만나는데 일박이일의 시간은 너무 촉박했다. 일박이일이라곤 해도 가는 날 늦은 오후에 도착하면 저녁을 먹고 보면 여독도 있으니 자야 한다. 다음 날 서둘러도 마구 달려가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늘 옴마를 친구의 식당에다 모시곤 피부관리사 친구도 친구의 식당으로 오라고 해서 식당일도 함께 하면서 함께하는 시간을 채운다. 대개는 식당을 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웃고 떠든다. 이 친구는 원래 시인이 되어야하는 친군데 식당아줌마가 돼버렸다. 이 또한 나는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옴마도 주무시고 피부관리사 친구도 잠이 든 때 식당하는 친구와 나는 노후생활에 대해 어떤 합의에 도달했다. 실로 자연스러운 합의였지만 통상 있는 합의는 아닐 것이다. 늙으막에 소탈하고 소박한 언덕을 사서 소탈 소박한 집이라도 지어서 함께 살며 책이나 싫도록 읽고 싫도록 수다를 떨기로, 그러다 내가 출판사를 하고 있으니 수다를 모아서 책으로도 만드는 장난질도 치자고 합의를 봤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다 누가라도 먼저 아침에 일어나 자는 듯 죽어 있으면 양지바른 곳에 봉분도 없이 소탈소박하게 팡팡 묻어주기로 한 합의가 통상 있을 수 있는 합의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간단히 합의하고 우리들의 합의가 너무 마음에 들어 낄낄거렸던 것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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