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성범죄, 어떤 처벌을 받았나?
조선시대 성범죄, 어떤 처벌을 받았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0.13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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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 전)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

11살 어린 아이를 강간한 사노 잉읍금을 교수형에 처했다.『태조실록』1398년 윤 5월 16일조.


철원 사람 정경이 처녀 연이를 강간하려고 밤새도록 때렸으나 연이가 완강히 항거하다 죽었습니다. 청컨대 정경은 교수형에 처하고, 연이는 정문(旌門)을 세워 그 정절(貞節)을 표창하게 하소서.『세종실록』1429년 11월 27일조.

강간죄를 처벌한 조선시대의 법률은 이렇듯 추상같았다. 1367년에 제정된 명나라 법인 『대명률』에 따른 처벌이었다.

무릇 화간(和姦)은 장 80대, 남편이 있으면 장 90대, 조간(刁姦:여자를 유괴한 뒤 간음)은 장 100대, 강간미수죄는 장 100대에 3,000리 바깥의 먼 곳으로 유배, 강간한 자는 교수형(絞首刑)에 처한다.”『대명률』〈형률·범간조(犯奸條)〉

판사(1품∼3품까지의 고위직) 이자지 부부가 잇달아 사망했다. 그러자 그의 16세 딸 내은이가 삼년상을 행하려 했다. 그런데 가노(家奴) 실구지 형제와 그의 처남 박질 3명이 내은이를 자기 집으로 끌고 가서 손발을 묶었다. 내은이는 밤새도록 저항했으나 그만 힘이 빠져……. 3명은 사지를 서서히 찢어 죽이는 능지처사(陵遲處死)에 처했다. 상전(上典)을 겁간(劫姦)했기 때문이다. 『태종실록』1404년 2월 27일조

1436년(세종 18년) 임복비라는 여인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아버지의 첩인 소근의 집에 살다가 어연이라는 배다른 오빠에게 강간을 당하여 임신까지 하게 되었다. 그녀의 숙부는 복비의 임신사실을 알고도, 박아생이라는 사람에게 시집을 보냈다. 아이를 낳을 날짜가 임박했던 복비는 더 이상 피할 길이 없어 자신을 임신시킨 배다른 오빠와 함께 도망치고 말았았으나 곧 체포되어 복비는 교수형에, 강간범인 어연은 참형을 당했다. 강간을 당한 것도 억울한데 임신까지 당하고 거기에 억지결혼과 퇴로 없는 도피행각으로 내몰려야 했으니…. 그런 여인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극형을 결정한 세종대왕은 과연 만고의 성군이 맞는가?

1477년(성종 8년) 내은산이라는 사람은 의붓아버지와 짜고 양녀(養女) 덕비라는 여인을 부인으로 삼고자 했다. 이들은 덕비와 덕비 아버지가 길을 가는 것을 보고는 아비를 강제로 붙들고, 덕비를 업고 달아났다. 덕비는 내은산의 집으로 끌려가 강간을 당하고 말았다. 아버지와 아들이 짜고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것이었다. 이들을 교수형에 처했다.『성종실록』1477년 12월 16일,17일

부녀자 강간죄가 추상같다 해도 천민의 경우에는 법률에 따라 교수형으로 처벌됐지만, 양반의 경우에는 장과 유배형 등으로 마무리되는 일이 많았다. 특히 종친이나 부마와 같은 왕실 사람의 경우 처벌에 어려움이 많았다.

청풍군 이원은 세종의 막내인 영응대군의 외동아들이었다. 천하의 난봉꾼이었던 그는 7촌 숙부인 이효창의 첩기(妾妓)인 홍행과 간통한 죄로 파직 당했다. 특히 정희왕후(세조의 왕비)의 부음(訃音)을 듣고도 홍행의 집에 머물렀기에 탄핵을 받아 유배형의 처벌을 받았다. 『성종실록』1479년 7월 28일조

선조의 아들 순화군 이보는 여러 차례 살인을 했고 제 어미의 배비(陪婢)를 겁간한 죄로 유배형에 처했다. 『선조실록』1600년 7월 20일조. 가여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힘없는 자들이다.

1737년(영조 13년) 창녕에 살던 17세 소녀 문옥이가 팔촌인 문중갑과 나무를 함께 하다가 성희롱을 당했다. 그때 문옥이가 ‘같은 성씨끼리 무슨 짓이냐!’ 라고 꾸짖은 뒤 옷소매를 떨치고 돌아왔다. 하염없이 울던 문옥이는 몰래 독약을 구해 마시고 죽었다. 『영조실록』1737년 9월23일조.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정은 정절을 지켰다. 는 이유로 소녀에게 정려문(旌閭門)을 세워주었다.

강간죄는 교수형에 처했던 엄격한 조선시대였지만, 그 천인공노할 죄는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인권을 생각했다면 차라리 궁형에 처했다면 어떠했을까? 그것이 너무 중한 처벌이라면 차라리 나는 성범죄자요! 라고 새기는 자자형(刺字刑)도 괜찮을 듯 싶다.

산수좋은 곳에 차지한 요상한 모텔들이 성업중이라고 하니 조선시대 대명률로 다스린다면 장 80대, 90대, 100대, 3,000리 밖으로 유배나 교수형이나 능지처사에 처해질 사람들이 참 많을 것 같다.

성범죄자에게 화학적 거세니 전자발찌니 하는 이 시대에 삼정승(三政丞) 중에 한 분이었던 노(老) 정객이 골프를 치다가 성희롱혐의로 조사를 받고, 장군이란 사람이 부하 여 병사를 성희롱인가 추행인가를 하다가 긴급 체포 구속되는 것을 보고 한 번 되새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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