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정치(中國政治)의 전개과정(Ⅰ)
중국정치(中國政治)의 전개과정(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0.19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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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국립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강의)교수·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장·지리산 막걸리학교 교장

중국 정치의 원시시기로 혹은 정치사상의 배태기로 당우(唐虞)에서 하·은·주 말까지 약 1500년은 다시 당우에서 은말까지 약 천여 년을 부락기(部落期), 서주(西周) 약 300년을 봉건기, 주의 동천(東遷)으로부터 공자출생까지 약 200년을 패정기(覇政期) 등 3기(三期)로 나누었고, 영국의 Edward Jenks 또한 춘추전국 이전의 정치사에 관해 최초를 토템 사회, 다음을 부락사회· 국가사회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는 양계초(梁啓超)의 시대 구분과 사실상 공통되고 있다.


양계초가 이미 우·하·은까지를 부락사회로 보았고, 동작빈(董作賓)은 복사(卜辭)를 통해 은대에 이미 농업사회로 전입되었음을 지적했다.

선사시대로 불리는 은(殷)대 이전은 축목사회로 본다면, 집단도 형성될 수 없고 경제 또한 존재치 않는 것이다. 이른바 정치는 거기에 군중의식이나 조직관리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집단 부족사회의 추장(酋長)에 의한 농업사회 속에는 이미 정치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토템 사회에는 추장이 없었다. 따라서 집단을 이끄는 수령이 없다. 동시에 정치사상도 존재할 수 없었다.

중국에 있어 정치행위는 부락사회에 씨족의 조직이 생기고, 지능·무력 면에서 뛰어난 사람이 후(后)나 원후(元后), 또는 군(君)으로 불리는 수령으로 옹립되어 공주(共主)가 됨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공주는 곧 선출된 추장이며 한 씨족의 종교와 정치를 총대표하다가 결국 재능이 탁월한 사람에게 선양(禪讓)하게 된다. 그들은 무력에 의한 정복이 아니라 부락 군중들의 자동적인 추대에 따른 것이었고, 그들 수령의 하는 일이란 외적을 무찌르면서 자기 부족을 보호하는 전쟁, 즉 융(戎)과 인류와 하늘의 중간에서 모든 염원과 의지를 전달하는 제사, 즉 사(祀) 등 두 가지에 불과하거늘, 이때 원후의 발생 배경과 정치적 지위에는 인륜(人倫)과 종교와 정치를 병행한 것이다.

따라서 원시시기의 정치사상은 모두 종교성·윤리성·정치성을 그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먼저 국가의 기원이랄 수 있는 씨족을 리드하는 족장(族長)은 정치의 수령이요, 전장의 총수요, 동시에 주제(主祭)자다. 그 통치자는 곧 하늘과 백성의 중간에 서서 하늘에게 모든 것을 보고하고 기원하는 대표다. 문제는 하늘이 직접 인류의 행동을 지휘·감독하는 대상으로, 동시에 의지가 있고 감정이 있는 절대자로 보고 있는 것이다. ‘시경’이나 ‘서경’에 하늘의 뜻에 따라 국가가 존재하고, 하늘의 뜻에 따라 인류가 존망할 수 있다는 기록을 참고한다면 그를 신의정치(神意政治) 혹은 천의(天意)정치로 이름할 수 있다. 다시 요약하면 하늘은 백성을 탄생시켜 주고 동시에 군권을 수여한다는 왕권신수(王權神授)의 관념으로서 바로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말하게 되었다.

이런 왕권신수의 관념은 백성의 지위를 격하시킨 것이 아니라 백성의 지위를 천자(天子)와 동등시했고 동시에 백성은 하늘의 소산이라 백성을 다스림은 하늘의 뜻을 받음으로 해석되어야 하고, 나아가 통치자의 의지는 반드시 백성의 의지를 의지로 삼아야 한다는 ‘민위방본(民爲邦本)’의 이른바 민본(民本)사상을 낳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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