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홀로서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9.2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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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현옥/작가ㆍ약사
누군가 노래한 것처럼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이라서 그런지 가을 들면서 주변에 상을 당한 분들이 많다. 우리는 언제나 죽음으로부터 삶을 배운다. 아침 신문에 금기일 수도 있을 얘기를 혜량하시길. 

상을 당했다는 연락을 받으면 형편에 따라 가기도 하고 못 가기도 한다. 이 나이가 되면 문상을 가는 일이 그리 특별하거나 놀라운 경험은 아닌데 며칠 전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는 많이 놀랐다. 최근 부쩍 안 좋아진 기억력에도 불구하고 그 댁에 조문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점점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잃고 하는 나이가 되어도 어머니 가시고 이어 아버지까지 잃은 친구는 큰 아픔으로 와 닿는다. 

친구는 의외로 담담했다. 가족 모두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던 듯했다.

영안실 풍경은 상가(라 해봐야 사설 장례식장이기 십상이지만) 음식들이 다 똑같은 것처럼 대동소이하다. 조문을 마친 문상객들은 직업별로 혹은 친소(親疎) 정도로 무리무리 나뉘어 유족들이 내온 흰 밥과 육개장과 전, 떡을 먹고 소주잔을 기울인다.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 사는 건 어떻고 하는 일은 잘 되는가 서로의 안부를 묻고 나면 대화는 자연스럽게 고인을 향해 흘러가게 된다.

친구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금실이 좋은 부부였다고 한다. 부인이 가시고부터 혼자서는 양말도 못 챙겨 신으실 정도였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그랬다고, 아버지 뵈러 친정에 가보면 진지도 잘 드시지 않고, 말끔히 치워져 있는데도 집안에 냄새가 나서 너무 싫었다며 친구의 눈시울이 가만히 붉어졌다.

시어머니 가시고 시아버지는 혼자서 십 년을 더 사시다 가셨다. 먼저 간 당신의 아내를 애달파하고 그리워하는 시아버지의 마음은 시어머니 제사 때 가장 잘 드러났다. 정숙하고 엄숙한 분위기(작은 소리도 싫어해서 어린아이들은 방에서 나오지도 못했을 정도였다)에서 제사 음식을 장만하게 하셨다. 정말로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진설해야 했기 때문에 3단으로 올리는 과일과 높이를 맞추기 위해 엄청난 양의 전을 부쳐야 했다. 전은 물론 비싼 다식까지 키를 맞추느라 비용이 많이 들었다. 나는 “보시기에 좋았더니라”의 경구를 떠올리며 냉소하곤 했다. 고인이 원하는 바가 아님을 알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나는 시어머니를 많이 좋아했는데 지나친 예(禮)가 그리워하고 기리는 마음을 가려버렸다.  

그런 시아버지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우리나라 음식은 정말 손이 많이 가는 것 같다. 식구들에게 한 끼를 먹이기 위해 주부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지 이제 좀 알겠다. 내가 요리를 배울 수 있었더라면 삶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시어머니 생전에 그걸 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당신을 위해서도 또 시어머니를 위해서도.안타까운 일이었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지만 살림하는 일을 부부가 서로 이해하고 이해받으며 산다는 것은 그렇지 못한 경우와 천양지차다. 여성운동가들이 목청 높여 떠들듯 가사노동의 대가를 법적으로 어떻게 보상받느냐의 문제 정도가 아닌 것이다. 사람이 가고 나면 그뿐, 남는 것은 돌이킬 시간도 힘도 없는 절절한 회한과 늙은 육신이다. 

친구의 아버지는 아내가 가고 그만 삶의 끈을 탁 놓아버리신 게 아닐까, 명절 겨우 넘기시고.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며 그렇게 결론지었다.

누구든 홀로 설 준비가 필요하다. 혼자 밥도 먹고 요리도 하고 놀 줄도 알아야 하며, 멍하니 있는 시간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동창 하나는 내게 이제는 육십이면 요절인 시대라고, 너도 건강 잘 챙기라고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 나더러 몸이 약해 육십까지나 살겠냐고 했던 한 소설가는 아내 잃고 혼자서 잘 ‘홀로’ 섰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먼저 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그들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남은 생을 잘 마칠 수 있게 저 세상에서도 보살펴 주실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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