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깃든 낭만
물에 깃든 낭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0.2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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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상의 물의 분포형태를 보면 바닷물이 약97%이고 나머지 3%가 육지의 물이다. 지구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70억 인구가 3%의 물에 의지하여 생명을 유지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의 종류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천수(天水:비·눈·우박·이슬·서리), 땅위에 흘러가거나 고여 있는 지표수(地表水:하천수·호소수·저수지수), 땅 속에 있는 지하수(地下水), 그리고 해수(海水)인 바닷물로 구분된다. 이에 우리 선조들은 물에 대하여 어떤 인식을 가지고 살아왔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조 초의 선비 독곡(獨谷) 성석린(成石璘:1338∼1423)은 집안에 정자를 지어놓고 차 끓여 마시는 것으로 낙을 삼았는데 단골손님으로 소를 타고 내왕하는 기우자(騎牛子) 이행(李荇:1478∼1534)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어느 날 이행이 차맛을 보더니 다동(茶童)을 불러 ‘너 이 차에 두 물을 부었구나?’하는 것이었다. 이에 다동은 ‘차탕기가 기울어져 물을 좀 쏟아서 다른 물로 채워 끓였습니다.’고 고백했던 것이다. 가공할 만한 물맛의 감식안이 아닐 수 없다.

율곡(栗谷) 이이(李珥:1537∼1584)선생은 물맛에서 무겁고 가볍고 하는 경중(輕重)을 가려 경수(輕水)는 물리고 마시지 않았다 하며, 명종 때 운곡(雲谷) 우남양(禹南陽:?∼?)은 물빛이 맑아 물 밑이 훤히 보이고 가벼운 물은 숫물, 물의 색깔이 뽀얗고 밑이 보이지 않는 무거운 물은 암물이라고 하여 암물은 마시지 않고 숫물만 마셨다고 한다. 또한 먹을 수 있는 우물물은 민물, 맑은 샘물은 암물, 누렇게 탁하거나 짠맛이 있어서 허드렛 물로 쓰이는 우물물은 누렁물이나 여물, 소금기가 있는 물은 간물, 칼슘이나 마그네슘 성분이 많은 물은 센물, 많이 마셔도 갈증이 사라지지 않는 물은 헛물이라고 하였으며 산꼭대기에서 나는 물과 산 밑에서 나는 물의 맛, 바위틈에서 나는 물과 모래에서 나는 물과 흙속에서 나는 물의 맛, 응달의 물과 양지 쪽 물의 맛이 달랐음을 구별하였다고 한다.

옛날 좀 산다는 집들에서는 장독대 곁에 물독대를 따로 두고 물을 가려 썼다. 밤에 하늘의 정기를 담아 머리를 맑게 한다는 정화수(井華水), 식수로 적합한 한천수(寒泉水:맑고 찬 샘물), 정월에 처음 내린 빗물을 받은 춘우수(春雨水), 입춘 날 내린 빗물 받아둔 것을 입춘수(立春水)라고 하여 잠들기 전 부부가 한 그릇씩 마시고 자면 아이를 밴다는 사랑의 묘약이었으며, 가을 국화꽃잎에 맺힌 이슬을 받은 물을 국화수(菊花水) 또는 추로수(秋露水)라 하여 이는 어지럼증에 좋다고 하였다. 또 입동(立冬) 열흘 후에 내린 빗물을 받아둔 것을 액우수(液雨水)라 하여 이 물로 약을 달이면 약효가 배가(倍加)되는 것으로 알았고, 섣달 납일(臘日)에 내린 눈을 받아 녹인 납설수(臘雪水)에 곡식 씨알을 담았다 뿌리면 병충해가 생기지 않는다고 믿었으며, 한양의 물장수 들은 인왕산에서 흐르는 백호수(白虎水), 삼청동에서 흐르는 청룡수(靑龍水), 남산에서 흐르는 주작수(朱雀水), 그리고 한강의 상하좌우 가장 한복판으로 흐르는 우중수(牛重水)를 따로 지고 다니며 팔았는데 청룡수는 술 빚는 데, 우중수는 장 담그는데, 백호수는 약 달이는데 하는 식으로 골라 썼으며 물 값도 차등이 심했다고 한다. 또 요즘은 누적된 피로회복에 좋다는 해양심층수까지 등장하여 고급호텔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지금같이 수질검사 장비도 없었던 시절 우리 조상들은 오로지 눈으로 보고, 혀끝으로 맛을 보고 물을 구별하였으니 물을 두고 문화가 이처럼 고도로 발달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지난해에는 물의 맛과 냄새를 전문적으로 평가하고 판별하는 전문가인 워터 소물리에(Water sommelier)라는 새로운 직업이 사전에 등장했다고 하니 반갑기도 하지 않은가!

유엔에서는 3월 23일을 물의 날로 선포하여 기념하고 있다. 2020년경에는 지구상의 인구 3분의 1일이 물 기갈로 고통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물이 인간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물이 없어서 매우 어려운 환경에 놓이지 않는 한 새삼 그 귀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필자는 댐을 건설하고 하천을 정비하고 홍수때 물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하는 직업인 토목직이라 물에 대한 감각이 남다르기에 목욕탕에 갔다가 샤워기 앞에 앉아서 면도질을 하면서 계속해서 샤워기를 틀어놓고 있는 젊은이를 보고 ‘물을 좀 잠그시죠?’라고 했더니 ‘당신이 뭔데 그래’하고 강펀치가 날아오기에 속으로 물벼락 맞을 놈. 하고 몸을 슬그머니 피하면서 세상 참! 하고 말았다. 조사를 해 보았더니 물 1병(500ml) 값이 850원 인데 소주 1병(360ml) 값이 1300원 아니던가! 즉 물 값이 곧 소주 값이 아니던가.

귀뚜라미 소리가 밤잠을 설치게 하고 있다. 지난 23일이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었다. 추로수나 한잔 하면서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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