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가을, 진도 사람들
2014년 가을, 진도 사람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0.2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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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지난 주말 비로소 진도에 다녀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팽목항 앞바다에서 일어난 그 슬픈 일을 바로 이야기하지는 못하겠다. 그래서 진도와 진도 사람들 이야기부터 해보기로 한다. 이 가을엔 어디인들 그렇지 않을 것인가 만은 진도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시인들이 말하기를 슬프도록 아름답다고 하는데 과연 진도는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버스가 진도대교를 건너서 진도에 가까이 갈수록 까닭을 알 수 없는 무엇이 가슴을 아리게 하고 있었다.


주말이라 당연히 도로는 차들로 꽉 막혔다. 예정대로 할 것이면 오후 1시에 도착해야 하는 버스는 3시 5분 전에 도착했다. 다행, 3시에 팽목항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가까스로 탈 수 있었다. 버스 기사 아저씨부터 다른 느낌으로 확 다가왔다. 모자도 쓰지 않아 검게 탄 얼굴이 가슴이 아팠다. 초행이라 불안해서 내가 자꾸 팽목항 가느냐고 묻자 대답보다 먼저 앞창에 꽂혀 있던 안내피켓을 뽑아 내 코앞에 흔들었다. 노란 피켓에는 서망, 팽목이라고 초록글씨로 적혀있었다. 피켓을 도로 꽂고 나서야 진한 남도 사투리로 말했다. “일키 딱 쓰났는디 머단다고 자꾸 물어싸요?” 나는 그냥 기사님을 바라보며 속으론 그러게 뭐한다고 이렇게 자꾸 묻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자신을 나무랐다. 밭에서 일하고 돌아가는 아주머니 한 사람이 타고 허수룩한 아저씨 세 분이 더 타면서 버스 안은 왁자지껄해졌다. 세 분 중 한 분이 버스를 처음 타본다고 말하자 아주머니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며 네 사람이 한꺼번에 서로 인사를 주고 받았다. 귀에 들어오는 대로 주워봤더니 세 남자들은 서망에서 열리는 ‘꽃게축제’에 가는 중이었다. 그러니 나는 하필 꽃게축제가 열리는 날 팽목항을 방문하는 것이다. 축제가 뭐야, 축제가…. 축제라는 말을 들어서 그랬든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부끄러웠다. 그러면서도 싱싱한 꽃게를 쪄서 국물과 함께 먹는 상상이 절로 들며 입에선 군침이 돌았다. 이번엔 죄스럽기까지 했다. 애써 귀를 닫고 멀리 차창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창밖은 가을이 한창이었다. 가을, 참 신비하고도 슬픈 계절이라는 생각을 또 했다. 매년 가을만 되면 드는 생각이다. 코스모스니 맨드라미니 금송화가 원색으로 피고 과일과 곡식이 풍성해서 마냥 즐겁기만 할 것 같은데도 막상 가을이 되면 즐겁기 보다는 알지 못할 두려움이 앞서곤 했다. 그렇다고 가을의 아름다움이 어디 가겠는가. 진도의 가을은 하늘마저 달랐다. 차갑도록 파랬다. 금빛 햇살을 받아 나뭇잎들은 빨갛게 타올랐다. 아직 남은 얇은 초록빛은 차라리 슬픔이었다. 남도라 그럴 것이었다. 아직 추수를 하지 않아 나락이 바람에 누런 물결을 이루며 몸을 뒤채는 논도 더러 있지만 대개는 이미 가을 걷이가 진작 끝났다. 베어낸 나락포기에서 다시 새움이 돋아나 있었다. 그 연한 풀빛이 또한 너무도 애틋했다.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아스팔트가 깔린 논길과 밭길을 구불구불 기고 달려서 팽목항에 도착했다. 저 바다를 어찌 볼까,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말이다. 빨갛게 칠한 등대만 쳐다봤다. 그 뒤로 펼쳐진 바다는 차마 쳐다볼 수가 없었다. 등대에는 노오란 리본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등대에 이르기 까지 조금의 거리가 있고 걸개 사진과 글들이 빈틈없이 걸려 있었다. 그 곳으로도 발을 들여놓지를 못했다. 깊은 숨만 쉬고 서서 빨간 등대만 쳐다봤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첫 걸개 사진을 바라보며 걸음을 뗐다. 바다를 피할 수는 없었다. 몇 발짝 가지 않아 멀리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어느 어머니의 뒷모습 너머로 무섭게 검푸른 바다가 잔인하게 넘실대고 있었다. 어머니의 뒷모습이 그 바다보다 더 무거워보였다.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발은 저혼자 움직이고 있었다. 웃는 모습이 이렇게 아플 줄은 내 진작 어떻게 알았겠는가. 아이들이 웃고 있었다. 기우는 배가 신기해서 웃고 있었다. 기우는 배가 장난인줄 알고 웃고 있었다. 가슴이, 가슴이 아팠다. 저 천진한 아이들에게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가. 바다야, 너는 아느냐?? 바다야, 너는 그날 무슨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낱낱이 알지 않느냐? 바다야, 바다야, 말을 해다오!!! 그러나 바다는 끝내 말이 없었다. 끝내 시치미를 떼고 검푸르게 침묵하고 있었다. 저 바다를 어찌할꼬!!! 진도와 진도 사람 얘기를 다 하지도 못했는데…. 다음에 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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