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진도와 진도 사람들(2)
2014년, 진도와 진도 사람들(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1.05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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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생각하면 할수록 말할 수 없이 슬픈 팽목항의 그 참사와 진도와 진도 사람들은 아무 연관이 없다. 어느 날, 그런 일이 팽목항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보면 진도 사람들도 희생자다. 그럼에도 그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의 일인 양 슬퍼하고 있었다. 길을 물으면 마음이 짠하다는 말부터 하고 너무도 진지하게 길을 안내했다. 자기들끼리 말을 하면서도 하이고, 하이고, 내 맘이 이래분데 갸들 부모들 맘은 우떻겄능가, 한숨을 먼저 쉬었다. 아름다운 섬 진도라는 땅덩이마저도 슬퍼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알고 봤더니 버스를 처음으로 타본다는 그 아저씨의 말은 웃자고 한 소리였다. ‘꽃게 축제’ 이야기도 잠시, 당연한 듯 팽목항 실종자 이야기로 넘어갔다. 갑자기 분위기가 조용해지며 다들 혀를 찼다. “하이고, 이제 찾아와도 거시만 거시기헐 것인데 워쩔 것잉가 말이여. 하이고, 하이고…. 한 사람이 한숨을 쉬자 모두 한숨으로 이야기가 중단 됐다. 나도 한숨만 쉬다 버스에서 내려 팽목항에 도착했다.

팽목항에는 현지 분들인 듯한 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들, 나처럼 모처럼 시간을 내 찾아온 사람들인 듯 했다. 세월호가 막 기울기 시작한 때 천진한 얼굴로 웃고 있는 여학생들의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살집 없이 야윈 몸의 키 큰 청년을 본 순간 나도 울음을 참지 못했다. 내가 걸개 사진들과 진실을 알리는 외침을 적은 걸개들을 다 보고 돌아 나오도록 그 청년은 그 자리에서 그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청년 역시 진도에서 만났으니 진도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 슬픈 얼굴, 아주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어차피 하룻밤 묵자고, 가능하다면 실종자 가족이 있는 진도실내체육관에서 그들과 함께 보내자고 온 걸음이라 시간은 넉넉했다. 팽목항에서 진도읍으로 나오는 버스 시간도 모르고 해서 좀 전 버스로 온 길을 되짚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진도읍과 팽목과 서망으로 이어지는 삼거리에 나오자 서망의 꽃게 축제로 데려다주는 셔틀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곳으로 가서 진도읍으로 나가는 버스 시간도 알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서망에는 이미 시작된 행사로 많은 사람이 왔다갔다 하며 왁자지껄했다. 꽃게 축제답게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꽃게가 엉금엉금 기어다니고 있었다. 가마솥에 푹 쪄서 벌겋게 달아오른 꽃게마저도 그 긴 다리로 유혹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체측의 인사 한 사람이 행사에 즈음하여 축사를 하고 있었다. “… 팽목항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너무도 슬픈 일이 일어났지만 살아있는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겠기에, 또 우리나라 꽃게 생산의 사분의 일을 생산하는 서망의 꽃게 축제이니만큼 예정대로 열었으니 마음껏 축제해시면 고맙겠습니다 …” 장내는 숙연해졌다. 축사가 끝나고 장내를 빠져나와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가야한다, 라는 말을 되뇌며 서망을 둘러봤다. 석양이 검푸른 바다를 더욱 검게 만들며 붉게 지고 있었다. 바다….

나는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나와 삼거리에서 내렸다. 행사 안내요원이 진도 나가는 승용차를 잡아 주었다. 팽목에서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진도 사람이었다. 차를 태워주어서 고맙다는 내 말에 설핏 웃기만 했다. 고맙긴요, 멀리서 오신 것 같은데 …. 그리곤 우리 두 사람은 진도읍에 도착하도록 아무 말도 안 했다. 뒷좌석에 앉아서 운전하는 그의 낮은 한숨 소리만 들었다. 혹시라도 내 한숨 소리가 새어나갈까 두려워 나는 몹시 조심했다. 말을 시키면 안 될 것 같아 실내체육관의 위치도 묻지 못하고 버스터미널에 내려달라고만 부탁했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터미널에 내려서 체육관에 대해서 묻자, 중년의 진도 사람은 너무도 알뜰하게 길 안내를 하면서 끝까지 진지했다. 그리고 제법 걸어야 되고 조금 외진 곳이니 여성이고 밤길이라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을 무겁게 했다. 그냥 하는 걱정이 아니라 마치 자신들의 동기간이나 되는 것처럼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외려 내가 괜찮아요, 늙은 여자인 걸요, 그들을 안심시키고 체육관을 향해 걸었고 그들은 돌아서서 가면서까지 나와 체육관을 걱정했다. 마지막으로 길을 물은 주유소 직원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걍 여그 타요, 타! 걷기 위험해부러…”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길에 가로수에 뭔가 노랗게 팔랑거렸다. 누군가 노란 리본을 달아놓은 것이다. 가로등 불빛 때문에 더욱 노랗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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