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원장은 연말까지 구조조정을 끝내고 내년 초부터는 본격적인 연구원의 활동에 들어가겠다고 의욕을 밝혔다. 구조조정 이후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는 작업을 본격화 할 것이라는 것. 그러나 조 원장은 능력 있는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며 내년부터 서울이라는 큰 시장에 가서 경남의 발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스카웃 하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문환 원장은 59년생으로 대구에서 출생해 대구에서 의과대학을 나왔다. 경남 양산에서 조문환 비뇨기과 의원을 20년간 운영하다가 2008년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다. 조 원장은 2010년 한나라당 경선 때 홍준표 캠프에서 활동한 것이 인연이 돼 홍준표의 사람이 됐다. 지난번 보궐선거 때는 홍 지사를 돕지 않았고 이번 재선 때 본격적으로 홍 지사를 도왔다. 조 원장은 조진래 정무부지사, 오태완 정무조정실장, 정장수 비서실장, 박재기 경남개발공사 사장과 함께 홍 지사의 정무 5인방으로 불린다. /편집자 주
대담 본보 황인태 회장
-경남발전연구원이 대폭적인 구조조정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홍 지사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 홍 지사가 가서 경남발전연구원 제대로 만들라고 하면서 저를 보냈다.
-현재 구조조정은 어느 정도 했나.
△연구원의 정규직이 77명이다. 이 가운데 34명을 구조 조정했다.
-그 정도면 절반 가까이 구조조정을 한 것인데 그러고도 연구원이 운영되나.
△연구원은 박사급 연구원과 사무직 그리고 역사문화센터로 구성돼 있다. 우선 역사문화센터는 전체적인 시장규모가 축소됐다. 그래서 자신들 스스로 잉여인력이 많다고 생각했다. 누가 나서서 조정해 주지 않으니까 오히려 문제가 됐던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은 구성원들과 다 합의가 되었고 큰 문제없이 구조조정이 됐다.
-사무직과 박사급 연구원의 실정은 어떤가.
△사무원들도 그동안 너무 방만하게 운영돼 왔다. 18명이었는데 절반인 9명 정도면 연구원 운영이 가능하다. 그래서 9명을 구조 조정했다.
-반발이 없었나.
△반발이 없었다. 나름대로 엄격한 기준에 의해서 선별했기 때문에 자신들도 또 남은 사람들도 동의했다.
-박사급들은 어려움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데.
△박사급은 모두 23명이다. 그 가운데 현재 6명이 구조조정됐다.
▶ 박사급 6명 구조조정으로 나가
-상당히 많은 숫자인데 어떻게 가능했나.
△그것도 밝히기는 어렵지만 다들 동의했다. 큰 문제없이 구조조정이 이루어졌다.
-도대체 그동안 연구원이 어떻게 운영되었길래 이렇게 많은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있었나.
△경남발전연구원은 도지사가 바뀌면 자기 아는 사람들 선심성으로 배려하는 기관이었다. 그러니 전공도 맞지 않고 능력도 없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달라.
△경남농업기술원에서 벼 농사를 짓고 있던 사람을 연구원에 데려다가 경제산업연구파트에 심어놨다. 그러니 연구가 제대로 되겠나.
-그건 누가 한 인사인가.
△김태호 지사가 한 인사이다.
-그 사람은 농업기술원에 있었으면 정년까지 일할텐데 괜히 연구원에 데려다가 빨리 짤리게 된 측면도 있겠다.
△그런 면도 있다. 그런데 연구원이 근무조건이 좋고 월급이 많으니 데려다 놓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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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이래 최대규모 구조조정 큰 잡음 없이 단행, 능력 인정받아
구성원 모두 구조조정 필요성 인정, 나는 아니면 좋겠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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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사 때 제일 많이 들어왔나.
△김태호 지사 때이다.
-김태호 지사가 제일 인심을 많이 쓴 셈이네.
△그렇게 볼 수 있다.
-또 다른 사례도 들어 달라.
△통계 전공한 사람을 경제파트에 배치한 것도 있고 역사문화센터에 있을 사람을 연구원 문화파트에 임명한 사례도 있다. 기본적으로 연구가 되지 않는 사람을 연구원으로 임명한 것이다.
-어느 정도로 연구능력이 없었나.
△제가 7월에 왔다. 제가 오고 나서 그때까지 있었던 중점 연구과제를 다 폐기하고 새로이 과제를 선정해 가져오라고 했다. 그랬더니 하나도 못 가져 온 사람도 있다. 연구결과는 고사하고 중점 연구과제를 선정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니 연구원이 제대로 기능한다는 것이 무리였다. 이건 연구소라고 보기 어려웠다.
▶ 김태호 지사때 가장 많은 사람 심어
-홍 지사 때는 한명도 안 들어왔나.
△홍 지사는 박사들 한명도 안 뽑았다.
-홍 지사도 자기 도와준 사람 데려다 놓으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나. 차라리 그 방향으로 건의해 보는 게 어떤가. 평생 지사할 것도 아닌데.
△글쎄…. 홍 지사가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보면 그리는 못할거다. 지금까지 홍 지사는 살아오면서 타협을 해 가면서 뭔가를 하지는 않았다.
-홍 지사도 대권가도로 달리고 있는데 그래도 타협하는 게 대권에 가깝게 가는 길이 아닌가.
△저는 생각이 다르다. 지금처럼 하는 게 대권에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홍 지사도 선거 때 도운 사람들이 있을텐데 그 사람들을 배려해야 하지 않나.
-자격이 되는 사람이면 누가 일부러 나서서 도와주겠느냐.
△그런 면이 있지만 그래도 그게 홍 지사 스타일인데 어쩌겠나.
-경남에도 연구과제가 많을텐데.
△지금 얼마나 할 일이 많나. 마창대교 분석도 그렇고 남부내륙철도도 그렇고 연구를 해서 우리입장을 정부에 건의할 내용들이 수도 없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6차 무투에서 밝힌 산지관광만 하더라도 우리 경남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들이다. 홍 지사는 벌써 지리산에 관광호텔을 짓겠다고 말하지 않나? 또 지리산 댐과 관련한 식수문제도 첨예한 사안 아니냐? 홍 지사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런 사안들에 대해 학문적으로 뒷받침해 중앙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이런 일을 하는 곳이 경남발전연구원이다. 그런데 지금의 수준은 좀 잘 하는 기자보다 못하다고 하는 것이 제가 내리는 평가이다.
▶ 홍지사는 단 한명도 자기 사람 심지 않아
-그래도 인간적으로 힘들었을 텐데.
△온갖 곳에서 전화 많이 받았다. 내 태어나서 그렇게 전화 많이 받은 것은 처음일거다. 그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일이지만 도의 싱크탱크로 역할해야 할 경남발전연구원이 제 기능을 못하는 데 욕먹는다고 하지 않을 일이 아니다. 제가 처음 올 때 욕먹을 각오하고 왔다. 저도 표를 받아 사는 정치인이다. 왜 생각이 없겠나. 그런데 욕먹는다고 안하면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
-이렇게 많은 인원을 구조조정하면서 큰 잡음 없이 하는 게 놀랍다. 그래도 저항이 있었을 텐데.
△우선 연구원 직원 전체의 사표를 받아 놨다. 그리고 연구원 구성원 자신들도 구조조정이 되어야 한다는 데는 다들 동의를 한다. 다만 나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래서 엄격한 기준을 정했고 그 기준을 지켰다. 그래서 큰 문제없이 구조조정이 되고 있다고 본다.
-그 기준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나.
△그건 개인적인 프라이버시의 문제도 있고 해서 밝히기는 그렇다. 아무튼 나간 사람들은 다들 스스로 동의하고 나갔다. 그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렇게 구조조정만 할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연말까지 구조조정을 끝내고 내년초 부터는 새로운 인물을 영입할 것이다. 현재 연구원에는 박사급 TO가 23명이다. 그래서 6명이 나갔으니 6명의 충원여유가 생겼다. 좋은 사람을 영입할 생각이다.
-사람은 있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대전 이남으로는 내려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제가 서울에 가서 스카웃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도 좋은 사람을 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내년 초부터는 스카웃 하러 전국을 다녀야 한다.
▶ 내년 초부터 서울에 인력 스카웃 하러 갈 것
-조 원장 개인적 이야기를 해 보자. 고향은 어디고 몇 년 생인가
△고향은 대구이고 1959년생이다.
-그런데 왜 양산에서 출마 했나.
△양산에서 병원을 했다. 20년 간 조문환 비뇨기과 의원을 경영했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했는데.
△2008년~2012년간 18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했다.
-무슨 자격으로 비례대표 의원이 됐나
△경남의사협회 대외협력 이사였다. 그 자격으로 비례대표 의원이 됐다.
-19대에는 출마하지 않았나
△현 양산 국회의원인 윤영석 의원과 경선에서 져서 출마하지 못했다.
-홍준표 도지사와의 인연은 언제부터인가.
△2010년 안상수 시장과 한나라당 대표경선을 할 때 인연을 맺었다.
-그때 어떤 역할을 했나.
△사람이 별로 없어서 총괄역할을 했다.
▶ 조원장, 대구서 태어나 양산서 병원 운영해
-그때 함께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범래 의원, 김정권 의원, 이종혁 의원, 박준선 의원 그리고 나까지 5명이었다.
-그 5명으로 대표 경선을 치렀나.
△그렇다. 그때는 그랬다. 안상수 시장은 당시 벌써 100여명의 국회의원을 포섭해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안 시장에게 패한 것 아닌가.
△그렇다.
-현 경남 정무부지사인 조진래 의원도 그때 국회의원 신분이지 않았나.
△그랬다.
-그런데 조진래 의원은 홍준표 도지사 편을 들지 않았나.
△조 부지사는 그때도 편을 들지 않았고 그 다음에 홍지사가 대표가 된 2011년 대표 경선때도 홍 지사 라인에 서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 조 부지사는 홍지사의 최측근이 아닌가. 사람들은 조진래 부지사가 오래전부터 홍 지사 측근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제가 말하기는 그렇지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조진래 부지사는 홍 지사가 경남지사 보궐선거 하러 내려올 때 처음 홍 지사 캠프에 합류한 사람이다. 서울에 있을 때는 홍 지사 편에 서지 않았다. 그래서 대표 경선 때 마다 홍지사가 “유일하게 있는 고등학교 후배 **가 도와주지도 않고 너무한다”고 서운해 한 적이 많다.
▶ 향후 정치인생 홍 지사의 뜻에 따라 결정
-헌법재판소 판결로 양산이 분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 양산에서 출마할 것인가.
△지금 홍 지사의 정무라인에 있는 사람들은 정치권에서 홍준표 사람으로 다 분류된 사람들이다. 따라서 우리들 정치인생은 우리 자신들이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한다. 총선에 참여하는 것이 홍 지사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면 출마하는 것이고 도에서 일을 하라고 하면 일을 하는 것이다. 전적으로 홍지사가 판단할 사안이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다. 정리/최인생·사진/이용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