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소설가
김자옥씨가 별세했다. 향년 63세라는데…. 밖에는 가을을 보내는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저 비가 그치면 날은 더욱 차가워질 건데…. 올 겨울은 지난해에 비해 더 춥다는데. 김자옥씨, 참 예뻤는데. 그녀가 싫증날 때까지 살려둘 수는 없었는지, 대상도 없이 원망이 인다. 빗소리가 점점 무거워진다. 너무 너무 쓸쓸한 밤이다. 덧니 같은 송곳니를 살짝 드러내며 눈웃음을 짓는 그녀를 이제는 못 본단 말이지. 도도하고 우아한 여인의 연기에서 껌을 쫘악쫘악 씹어제치는 여자에 이르기까지 능수능란한 연기를 하는 걸 못 본단 말이지….
김자옥씨는 별 중에서도 참 예쁜 별이 될 거다, 살아 있을 때도 참 예뻤으니까. 그래도 너무 일찍 데려가신 운명이 원망된다. 내가 청년기에 봤던 연속극에는 거의 다 김자옥씨가 있었다. 기억되는 연속극은 대개가 그녀가 주인공이었다. 가장 자주 상기되는 연속극이 ‘팔도강산’ 한혜숙씨와 민지환씨가 함께 기억되기도 한다. 한혜숙씨와 극중에서 머리를 뜯고 싸우는 장면은 짜증날 정도로 자주 기억된다. 동네의 이웃들이 싸우는 장면을 목격하면 여지없이 그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그 연속극을 보던 때 내 나이가 열 일곱? 열 여덟? 아마 그쯤이었을 것이다. 그때 김자옥씨는 너무 예뻤다. 내 나이 먹느라 바빠서 남의 나이 먹는 건 알 바 아니었다. 하물며 탈랜트의 나이라면 나하곤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관이 있다.
우선 내가 김자옥씨와 나이 차이가 불과 몇 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그녀는 일찌기 내가 공장에서 일을 할 때부터 대스타였기에 그녀는 나이를 먹지 않을 거라 여겼다. 영원히 젊고 아름다울 거라 여겼다.
그런데 아직 늙기도 전에 병으로 별세를 하다니. 게다가 암의 전이로. 좀 더 철저한 집중으로 전이를 막을 수는 없었을까? 암을 이겨낸 체험담을 들어보면 재발을 미리미리 알아서 치료하면 완치도 된다는데. 김자옥씨 같이 대스타도 전이를 막을 수 없었다면 우리 같은 서민들은 암이 걸리면 여지없이 당하는 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암에 대한 의학의 발전이란 것도 믿을 게 못 되는가보다.
이제야 대스타의 죽음에 대한 내 마음의 정체가 조금 확실해진다. 안타까움도 있지만 두려움이다. 나도 일주일 전부터 대변을 자주 본다. 아랫배가 둔하게 아프기도 하다. 평소에도 매운 것이나 고기를 먹으면 변이 묽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에 비할 바 아니게 묽고 또한 자주 본다. 이제 내 나이 오십을 몇 년 전에 넘겼으니 탈이 날 때도 됐거니 하면서도 슬슬 걱정이 되던 참이었다.
이번 건강검진 기간엔 꼭 검진을 받아야겠다. 매번 대수롭잖게 지나쳤는데. 이렇게 내 마음을 수긍해도 그녀의 죽음이 안타깝고 쓸쓸하다. 부디 그 곳에서는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젠 외로움 없는 사람으로 우리 곁에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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