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도 약속을 한다
기계도 약속을 한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9.2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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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기상/한국교원대학교 컴퓨터교육학과 교수
사람을 만나서 의견을 교환하자면 거쳐야 하는 단계들이 있다. 상대방의 눈을 보고 준비가 되어 있는 지 확인하고,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상대방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데도 말을 시작한다면 상대방은 나를 무례하다고 판단하거나, 내가 전달한 말은 상대방의 귀에 들렸을지라도 의미 있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을 잘 할 때 눈치가 있다고 하거나 매너가 있다고 하거나 교양 있다는 말을 듣는다.

사람간의 대화가 이런 단계를 거치듯이 우리가 일상에서 전화나 인터넷을 사용할 때, 관여하는 기기들도 이 같은 절차를 필요로 한다.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누르면, 마치 아파트의 전자키가 동작하여 현관문이 열리듯이 우리는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키를 누르는 동작과 문이 열리는 과정처럼 먼 거리에 있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 목소리를 듣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연결하는 기계들도 비슷한 순서를 따라야 한다. 사람은 대화를 나누다가 정확하지 않은 내용을 들은 것 같으면 다시 물어 보면서 정확한 내용을 들으려고 노력을 한다. 동일하게 먼 거리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인터넷을 통하여 원하는 정보를 갖고자 할 때, 그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고 기계도 그 상황을 극복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 같이 정보를 전달하는 기계 사이에 갖추어야 약속을 프로토콜이라고 한다. 원래 프로토콜이라는 말은 외교적인 용어로서 의전, 의례 또는 의정서를 나타내며, 국가 간의 관계 또는 공식 행사에서 지켜야 할 규범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의전을 잘 지킨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은 상대방을 내가 어떻게 대하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어떻게 대접을 받아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 간 의전에는 격식을 중시하면서도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의전을 위하여 존중, 상대방 문화의 반영, 상호주의, 서열, 그리고 오른쪽인 상석을 지킨다고 한다. 결국 이것은 문화가 다른 상대방이라 할지라도 상대를 존중하며 지켜야 할 격식을 지킴으로서 효과적인 정보를 주고받을 준비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프로토콜이 잘 지켜지도록 기계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계는 기본적으로 지능이 없기에 유연성이 없다. 물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지능적인 기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지만 사람이 보이는 유연성을 보이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이다. 그럼으로 기계를 통하여 정보를 전달할 때, 오작동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프로토콜을 만들 때 여러 가지를 고려한 약속을 필요로 한다.

인터넷도 이런 약속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인터넷의 대표적인 프로토콜을 TCP/IP라고 부르는 데 이 프로토콜은 이미 50년도 넘게 사용되고 있다. 처음부터 현재의 인터넷이 제공하는 모든 기능이 반영된 것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인 약속의 체계를 따라 기술적인 필요에 따라 지속적으로 갱신되어 오고 있다. 사람을 위하여 통신을 해야 하는 무생물의 두 기계 사이에서 무엇을, 어떻게, 언제 주고받을 것인지를 서로 약속한 규약이 정확하면 정확할수록 다양한 상황에서도 문제없이 작동할 것이다.

그러기에 이번에 우리가 겪은 전국적인 부분 단전 경험은 우리의 약속 수준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비록 농경 사회에서 빠르게 산업 사회로 발전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약속을 바탕으로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에 약하다. 기계들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킬 수 있지만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정해진 약속에 따라 동작 하도록 하면 기계는 그대로 따른다. 우리가 전력을 다루는 문제에서 보았듯이 결국은 사람, 기계를 만드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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